여울목을 베고 누워 별 보기
여울목을 베고 누워 별 보기
  • 김수형
  • 승인 2013.02.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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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스토리가 스며있는 골짜기와 마을을
욕망의 댐(물)으로 채우는 현실 안타깝다!
<특별기고> 김수형(예맥 대표)

한국적 스토리가 스며있는 골짜기와 마을을 욕망의 댐(물)으로 채우는 현실 안타깝다! 


나는 별을 좋아한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중학생 시절 안동시 성곡동에서 아마추어천문가인 학원 수학선생님의 조수가 되어 우사 옆 소똥 쌓아 놓은 곳에 대형망원경을 설치하고 하늘의 별을 관찰했던 추억이 있다. 그곳에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뒤에서야 우린 우사 속의 그 많은 소들이 소똥 쌓아 놓은 곳에 올라서서 하늘을 관찰하는 아마추어 천문가와 그의 보잘 것 없는 조수를 소리 없이 관찰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친구들과 몰래 옥상에 올라가서 별똥별 구경하던 추억이 있다. 그때 누군가가 별이 떨어질 때 "앤조"라고 외치라고 가르쳐 줬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대부분 사람들은 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말하지 못하고 "어~"라고 말한단다. 그러니 "애인 주세요."라는 소원을 말하기 전에 별은 떨어져버린단다. 그 시절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이성교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별이 떨어지기 전에 “앤조"라고 줄여서 빨리 발음해야한다고 알려줬다. 참 그날 하늘의 별만큼 많이 앤조를 연습했고 외쳤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저녁 선후배들과 우리들만의 졸업 축하를 위해 낙동강변을 향했다. 우린 고등학생시절 토론동아리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활동을 했었다. 그때 여자후배 가운데 인순이가 있었다. 살짝 까맣고 단발머리 여고생. 자기 보다 늘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녔고 많은 생각을 하고 무척 열심히 살던 악바리 후배 김인순. 하루는 인순이를 만나 지난주 토론활동에 왜 오질 않았냐고 물으니 절에 가서 못 왔다고 했다. 얼마 후 교회에서 나오는 인순이를 만났다. "너 절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니?"라고 물으니 단발머리 까만 눈동자의 인순이는 "조용히 생각하고 싶은 때는 절에 가요. 절에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아요. 울고 싶을 때는교회에 가요.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니 맘 놓고 울 수가 있어요." 난 그 말에 멍해졌다. 인순이의 말이 나에겐 작은 충격이었다. 

그 날은 그런 단발머리 까만 눈의 인순이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 밤은 바람이 참 시렸고 별이 무척이나 많았다. 인순이가 그 별을 보고 걸으며 나에게 물었다. "선배! 별은 언제 제일 아름답게 보이는지 아세요?" 난 한때 별을 관측하러 다니던 학생이 아니던가. "인순아! 별을 볼 땐 여름이 좋아. 오전에 비가 오면 훨씬 더 잘 보이고 특히 빛이 없어야 해. 더욱이 달이 없는 그믐날이 최고야."라고 지식을 자랑했다. 인순이는 내 대답을 듣는 듯 마는 듯 말했다. "선배! 겨울에 시리도록 반짝이는 별이 제일 이쁜 것 같아요." 난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한양대 근처 술집 앞에서 난 인순이와 우연히 마주쳤다. 서로 반가워했었고 그렇게 짧은 재회는 끝났다. 얼마 후 인순이가 소설로 등단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순이에 대한 다른 소식을 들은 적은 없다. 난 여고생 후배 덕에 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2000년 3개월 간의 호주여행을 별 계획 없이 갑자기 떠났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여비가 부족했고 두달정도를 시드니의 로바다야기 가게에서 일을 했다. 난 홀써빙을 거쳐 주방 보조 일을 했었다. 그러던 차에 사장의 지시로 경험이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가게 로바다야끼의 시마(오픈된 공간에서 요리사 한명이 구이 등을 만들어 제공하는 곳)를 담당하게 되었다. 미숙한 난, 내가 만든 음식을 손님에게 건네줄 때마다 손님 앞에서 자신이 없어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에는 그런 나를 타이르던 사장도 나의 그런 행동이 반복되자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주눅이 들어갔고 손님들은 내 시마에 앉으려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렇게 시마를 지키고 있는데 주방에서 생강 껍질을 벗겨달라고 생강상자를 넘겨줬다. 작은 생강이 올록볼록 서로 붙어 있어 껍질을 벗기는 것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 칼은 사시미(회)칼이었다. 난 별생각 없이 생강을 제사 때 치던 밤 치듯이 시마에 선 채 밤을 치기 시작했다. 얼마동안 생강을 쳤을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게안의 모든 시선이 나한테로 모여 있었다. 나를 싫어하던 사장도 주방입구에서 날 쳐다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가게의 호주사람들은 내가 진짜 실력 있는 오리지널 제패니즈 요리사로 보였던 모양이다. 한국의 가장 시골 ‘지례’에서 제사 때면 늘 밤을 치던 것이 지구 반대쪽 남반구의 가장 큰 도시 사람들에게는 실력 있는 요리사의 화려한 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 작은 생강을 큰 회칼로 싹싹싹 치는 것을 첨보면 누구라도 대단한 요리사로 볼 것이다. 제사를 열심히 지내고 정성을 다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난 제사 덕을 톡톡히 봤다.

돈이 모이자 시드니를 떠나기로 계획을 잡았다. 시드니에서 브리스번까지 버스로 48시간정도 걸렸던 것 같은 기억이 남아있다. 버스가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저렴하고 야간에 별을 볼 수 있어서 선택했었다. 그 결과 버스 여행은 나에게 정말 끔찍한 고통이 안겨주었다. 그 버스는 계속해서 달렸고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버스는 식사시간에만 휴게소에 섰던 것 같다. 아마 실제로는 더 많이 정차했겠지만 내 기억에는 무릎의 통증과 긴 이동만 남아있다. 하나 더 남아있다면 휴게소에서 바뀌는 반바지의 버스기사아저씨였다. 한참을 달려 심야에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소문에는 사방에 지평선 밖에 없는 호주의 인적 없고 불빛 없는 심야의 휴게소에서 보는 별은 엄청나게 아름답고 많아 장관이라 했다. 하지만 큰 고통이 따른 만큼 그 곳의 별은 대단하지 않았다. 내 고향 안동 지례에서 보는 별보다 못했다. 어린 시절 수몰된 내 고향 지례에서 봤던 별이 훨씬 환상적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해 8월이었다. 손님이 지례에 왔고 아버지는 그분과 밤 늦게까지 약주를 하셨다. 밤은 깊어갔다. 그 손님이 그 시각에 지례에서 20리 상류 내급에 가신다 했고 혼자 보낼 수 없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달 아래 밤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날의 기억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내급으로 가는 20리길은 선선했다. 그래도 8월인지라 내급에 도착하니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고 우리는 함께 옷을 벗고 강물로 들어갔다. 땀에 젖은 몸을 씻고 헤어지기로 한 것이다. 차지 않은 미지근한 강물이 참 좋았다. 물가에 들어가 누워보니 머리가 귀 아래까지 물에 잠겼다. 여울에선 물소리가 풀숲에선 벌래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의 은하수는 물소리에 맞춰 흐르고 별들은 풀벌fp 소리에 맞춰 반짝였다. 물속에 돌을 베고 한참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누운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울 가까이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리 깊지 않은 여울 근처에 가서 여울목을 베고 누었다. 누운 채 귀를 물 속에 담그자 여울로 작은 돌맹이들이 굴러 떠내려가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따랑 따랑 카랑" 하늘의 별이 울리는 듯한 소리에 몽환적으로 별이 쏟아졌다. 난 그렇게 여울목을 베고 누워 별을 봤다.

그렇게 아름다운 별을 볼 수 있던 지례가 수몰이 되어 20년이 지났다. 많은 추억이 20년 전 그 물 속에 잠겨 잊혀졌다. 최근 길안에 또 보와 댐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골짜기 마다 보를 만들고 댐을 만들고 있다. 안동댐이라는 국내 4번째 큰 댐이 안동에 있다. 그리고 내 고향 지례를 집어삼킨 임하댐이 있다. 최근에는 영주에 댐이 하나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또 길안에 댐을 만들겠다고 한다. 일부에서 국토부를 움직여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21세기 국가 주력산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우리의 스토리텔링이 세계를 감동시키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찾으려고 대학마다 콘텐츠 관련 강의를 만들고 각 도마다 콘텐츠진흥원을 만들고 그리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넣은 지 십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세계에 얼마나 소개하고 있을까?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춤추게 만들었다. 그 것에 콘텐츠와 스토리가 우리가 찾던 한국형 스토리일까? 그것은 우연히 대박을 터뜨린 서양문화의 재미있는 흉내 내기임을 우린 알고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21세기형 이야기 산업의 핵심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운데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와 감성이 알알이 박혀있는 바로 그 골짜기 골짜기를 물로 채우고 그곳에 이야기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추억의 씨앗을 빼앗고 꿈의 터전을 앗아가고 있다. 도시로 몰아내고 있다. 우린 대자연에서 쫓겨나와 현란한 빛을 가진 도시의 변두리 구석 공장형 축사 옆 소똥 무더기 위에서 망원경으로 무한한 우주속의 별을 관찰하는 꼴이 되었다. 감성적 꿈이 없는 욕망의 배설물 위에서 물질적 수익만을 위한 과학을 생각해야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꿈이 없고 스토리가 없는 우리가 나르호를 쏘아 올려 우주에 가면 뭘 할 것인가? 은하수에 또 어떤 욕망의 댐을 만들 생각인가?

우리는 대자연 속에서 별을 보고 노래하고 이 땅의 아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그 꿈의 터전에 추억의 씨앗을 심어서 크고 작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어야하고 그 것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되도록 하여야한다. 비록 원동력인 산업화가 되지 않더라고 우리다운 꿈과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로 키워야하는 하는 것이 우리다. 그들이 세계에 나가서 꿈을 가지고 원동력을 만들어갈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건축물과 다양한 전통 스토리를 갖고 있으며 잊혀 졌던 민간신앙, 불교, 유교, 독립운동과 근대사상가들로 이어지는 정신적 문화유산을 다시 발굴하고 연구해야하는 곳이 이 곳 경상북도 북부지역이다. 정부의 대의를 보면 이곳을 몇몇 인근지역의 수자원을 확보해주기 위해 이야기와 꿈이 박혀있는 골자기 골짜기를 물속에 넣을 것이 아니라 가장 전통적인 경상북도북부지역은 전통문화 산업의 핵심 콘텐츠를 발굴하는 정신적인, 문화적인 자원의 생산지로 만들어 대한민국에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함께 정신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곳으로 보호하고 육성되어야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별을 느꼈던 까만 머리 여고생이 지역의 이야기로 세계가 감동할 스토리를 만들길 꿈꾼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욕망의 배설물 위에서 생업만을 보고, 물질적 수익을 위해 우주를 보고, 안정적인 공무원과 수익만을 생각하는 대기업의 일원이 되려고만 청춘을 보내도록 할 것이 아니라 세계와 우주를 꿈꾸고 별을 찾아다니는 꿈과 이야기를 가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아이들로 키워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과 어느 강변 달 아래 밤길을 걸어 보고 어느 여울에서 여울목을 베고 누워 별을 봤으면 좋겠다. 그들이 꿈꾸고 사랑한 별을 보기 위해 세계인들이 안동을 찾아오고 별을 헤는 밤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 것이 다시 이야기로 소설로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인들이 꿈꿀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수자원을 통해 생겨난 물질적 욕망을 담을 댐과 보를 계속해 만드는 것을 버리고 우리의 자연과 전통문화에 아이들의 꿈을 담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쓰는 것이 21세기형 스토리산업의 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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