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12시30분. 배가 고파 우성섭 형과 박욱원, 이렇게 셋이서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제일은행 오른쪽 뒷길로 들어가면 안동 신시장 골목 초입이다.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붐비고 있어 습관처럼 무심코 "오늘 장날인가?" 중얼거렸다. "응, 맞아"
안동 장날은 2일, 7일이다. 맞구나. 그 맞대꾸에 습관처럼 인도에 좌판을 깔아 놓은 풍경을 살폈다.
아니, 웬 무가 저리 크노? 내 허벅지 만한 놈들부터 내 종아리 크기만한 녀석들이 한더미 쌓여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다시 무를 팔고 있던 좌판을 돌아보니 팔다 남은 무를 트럭뒷칸에 싣고 있었다. 농부처럼 보이는 아저씨에게 종아리처럼 굵은 무 3개가 얼마냐고 물었다.
"천원만 주이소"
"꽥, 이렇게 쌉니까!"
오천원을 주고 천원짜리 네장을 받아 쥐는 내 손이 부끄러워졌다. 괜히 공짜값을 치른 기분이었다. 오후 내내 무직하게 느껴지던 무 3개가 마음 속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
이튿 날. 조금 피곤한 기운이 느껴져 일찍 귀가했다. 뭘 하지? 2005년부터 TV 보기를 중단한 이래 정신이 말똥말똥한 날에는 책을 펴 놓거나 노트북을 켜 신문기사를 본다. 그러다가 지치면 다리미를 꺼내 와이셔츠와 바지옷을 다리기도 한다. 근데 오늘은 어제 사온 무 3개가 자꾸 아른거린다.
'그래, 처음이지만 깍두기를 담그자'
지금도 혼자 살고 있지만 예전엔 음식이나 반찬과 관련된 비법은 엄마에게 전화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다.
무 3개를 꺼내 물로 씻고 내 방 한가운데 신문지를 깔았다.

껍데기를 벗겨 놓으니 마치 새 색시 속치마 벗어 놓은 양 켭켭히 흰 속살들이 부끄러워 하는 듯 했다.


먼저 무를 굵게 썰까, 그냥 조금 작게 썰까 고민하다가 내가 아담한 걸 좋아 하니까 좀 이쁘게 썰기로 했다.

굵은 소금을 한 주먹 한 움큼 두번 뿌리고 물 한컵으로 뒤섞어 주었다. 그렇게 골고루 뒤적거리며 약간의 물기를 묻히며 녹여 주었고, 한 두 시간 가량 소금기가 스며 먹도록 놔 두었다.


저녁을 대충 먹고, 굵은 양파 1개와 쪽파 10개를 썰고 마늘과 생강을 빻았다. 고추가루 한 컵에 까나리액젖 반 컵을 쏟아 넣고 양념으로 무치니 맵콤해 진다. 손끝으로 찍어 맛을 보며 흑설탕과 물엿, 새우젖을 조금씩 넣으며 간을 맞춰 들어갔다.

소금기가 스며 든 무 몇 개를 맛보니 약간 짠 맛이 느껴진다. 더 놔 둬야 하나. 지금 무쳐야 하나. 헷갈린다. 한 두시간 지났으니 방치하면 더 짜질 것 같다. 채를 꺼내 소금 물기를 완전히 제거 했다.
'자- 이제 버무려 볼까'
양념이 아까워 깍두기가 든 플라스틱 통에 그대로 버무린다. 손바닥에 또 손끝에 이끌려 상호 스며드는 그래서 미끌려 들어가는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 해야 하나. 고추가루와 마늘, 쪽파와 생강, 그리고 액젖과 설탕, 물엿의 엎치락뒤치락이 내 손끝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물과 햇빛의 조화로 태어난 천일염을 가득 머금은 무 조각들과의 재조합. 서로 독립된 성격이면서도 의존하고 의지해 새로운 성분으로 거듭난 녀석들을 보며 얽히고 설킨 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살이까지 고민하는 내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

흰 것과 붉은 것. 붉은 색으로 보이지만 흰 속살을 부끄럽게 내 비추고 있는 무조각.

며칠이 지나면 아삭거리며 내 입으로 들어갈 깍두기. 처음으로 만들어 놓고 내심 자랑스러워지기 까지 한 오늘 하루 내 일상의 고요함.
혼자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그 순간까지 대낮에 홀로 집 지키고 있는 귀염둥이 마르티스 개 [짤순이]는 뭐 먹을거라고 계속 따라다니며 서성거리고 있다.
후일담 : 며칠 후 작은 플라스틱 통에 나눠 틈틈이 먹어 보았지만 영 맛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내가 생애 처음 다음고 버무린 건데 좀 먹어보자고 다짐했지만, 12월이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어도 나의 빛깔만 좋은 깍두기는 오늘도 냉장고 구석에 처박힌 채 외롭게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