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삼의
다시 찾은 삼의
  • 박영숙
  • 승인 2012.09.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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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문단-산문>박영숙

“왜요!!”
“아그들이·····. 덥다고 나서자 해서.”

그날 밤에 부산서 취업준비 중인 아들과 서울서 아직 서툰 직장생활로 고생하는 딸이 예고도 없이 함께 왔다. 요즈음 사무실 컴퓨터에서 아이들과 통신을 나누는 남편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나 서예 공모전에 애쓰는 나에게 부담이 되어선지 전달을 하지 않았다. 어미 코앞에 불이 붙었는데 눈치 없이 뭉치자는 아이들이나 짝짜꿍 맞춘 남편이나 석탄 백탄 타는 것은 알지라도 내 속 타는 것은 알지 못했다.

‘에꼬, 우야꼬.’
내안에 잠재된 갈등이 우거지 인상으로 나타났나보다.
“그라믄 혼자 편히 글씨 쓰시게. 우리끼리 댕겨 옴세.”
남편이 말하고,
“그래도 그라면 안되지요, 어매!”
아들이 거들고,
“엄마, 계속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혈압 오르니더. 바람 쐬고 와서 다시 시작하소. 어매 빠지면 속없는 찐빵이시더. 빵숙씨!”
딸이 마무리를 한다.
‘에라이, 접자. 아무리 급해도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 아니겠나.’
벼루와 붓을 씻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해졌다.
머리를 맞대고 갈 곳을 정한 목적지는 영양에 있는 삼의계곡으로 결정 되었다.

아버지의 유년이 담긴 삼의는 내가 불혹이 지나서 만난 기쁨이다. 다시 찾은 삼의에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야은선생의 옛 시조 한 구절이 먼저 떠오른다. 1994년 이맘때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요강 싸서 찾아 온 그곳이다. 추억이 서린 짧은 다리 아래 자갈과 강 모레가 섞인 그늘진 곳은 그대로인데 우리 곁에 늘 함께 하실 줄 알았던 두 분은 사이좋게 저승가신 지가 벌써 십일 년이 되었다. 말씀 없이 잔잔한 미소만 띠셨던 시어머님, 평생 동안 맏딸이 어떤 일을 하여도 그저 잘 했다며 기뻐하셨던 친정어머니의 편안했던 품이 이곳에 오니 더욱 그립다. 장마 진 후 계곡물은 맑기가 만경 같으며 그 속에 노니는 어린 물고기는 마치 인자하셨던 어머니 앞에 재롱 부렸던 나의 유년기 모습 같았다.

십칠 년 전 텐트 속에 옹기종기 누워서 할머니 두 분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지금은 그 텐트공간에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키도 몸도 마음도 커버렸다. 어머님과 하룻밤을 보냈던 그리웠던 그곳은 벌써 먼저 온 피서객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고 우리는 강둑 솔밭 그늘진 곳에 1박 2일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늘 그러하듯 야외에서 일박의 시작은 잠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아우에게서 빌려 온 대형 텐트는 성인이 된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도 넉넉한 공간이었다. 너럭바위에 덩그러니 남은 오래된 추억의 텐트는 이제 오직 우리 부부만의 야외 필요품으로 남게 되었다. 마음이 짠했다. 어머님은 가셨고 아이들은 머잖아 새로운 가족을 꾸릴 것이다. 남편과 나는 그 새로움에 마음 두며 늙어가고 종착역을 향해 느린 걸음을 걸을 것이다.
여름해가 최고 높이 떠 있는 시각, 이글거리는 태양의 영역은 그 어느 곳도 아닌 곳이 없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계곡 아래 내려오니 보기 좋은 청춘들의 물장난에 산천이 요란스럽다. 참지 못한 우리 가족도 어느새 햇볕을 피해 나름대로의 은신처를 소유하고 있었다. 다슬기를 줍고 물속에 예쁜 돌을 찾고 닮은 하얀 발가락을 서로 대어보며 탁족을 즐겼다. 먹물에서 떠나오기를 썩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산의 해는 땅거미를 일찍 가져다주고 산중 달은 더욱 높이 떠 있다. 벌레들의 극성을 피해 일찍 저녁을 먹고 사방이 터진 텐트 속에 네 사람이 나란히 누웠다. 덩치 큰 아들은 종갓댁 사랑채 기둥 같은 다리를 들어 남편의 배 위에 턱 놓는다.
“아배요, 기분 어떠껴?”
“큭! 야가 어른 잡네. 아이고, 어매요.”

예전에 곁에 누워계셨던 시어머님을 그리워하는 모습이다. 친구들과 여름휴가 가지 않고 아버지의 희망사항에 동행 해 주니 고득점의 효도를 하는 것이라며 재잘 거리는 딸이 예쁘기만 하다. 우리가족에게 자기가 빠지면 모든 일에 맥이 끊어질 거라며 하던 공부 잠시 접어두고 왔다는 아들아이의 유세가 행복하다. 삼년 전 큰 병에서 되찾은 남편의 건강이 행복하고, 언제나 여름 한 철 야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행복함이 내게 주어져서 참 행복하다. 얼레 설레 엉킨 나무 곁가지 사이로 맑은 여름밤 하늘의 별을 보며 잠이 들었다.

작가약력>
 경북 영양 출생. 1999년 안동시새마을여성백일장 산문부 장원.
2003년 안동문화원 주최 여성백일장 산문부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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