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문명 유산과 민중문화 저력이, 生克관계로 가야

지난해 10월 11일 경상북도의 정체성을 찾아 그 존재가치를 높이겠다는 목적을 표방한 「경북정체성포럼」(위원장 심우영)이 창립되었다. 포럼의 목적을 보면, 정책개발과 학술연구를 통해 경북정체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뿐 아니라 개선방안을 연구 홍보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말해 ‘경북의 정체성 확립’과 ‘경북위상 재정립’, 나아가 ‘경북브랜드 이미지 창출’을 통해 국가발전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경북정체성포럼에는 4개의 분과가 설치돼 있다. ‘화랑’, ‘선비’, ‘호국’, ‘새마을’분과이다.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4개 분과 포럼에서는 개별 토론회를 열었다. 각각의 토론주제는 ‘화랑, 그들이 누구인가’, ‘경북 선비들의 학문과 삶’, ‘경북의 호국정신을 찾아서’, ‘새마을정신과 경북의 정신문화’ 등 이었다.
활동개시 2년째를 맞은 경북정체성포럼이 5월 24일 안동시 국학진흥원에서 ‘경북의 혼(魂), 지금여기 되살아나다’ 라는 총회를 개최했다. 심우영 포럼위원장을 필두로 경북도 이주석 행정부지사, 김광림 국회의원 등 주요인사 40여 명을 포함해 약 5백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그런데, 경상북도의 정체성를 되찾아 확립하겠다는 학술토론회에 앞선 격려사와 축사의 내용이 정치적 발언으로 일관되었다. “우리는 보수이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20대의 젊은이들이 올바른 국가관과 정체성을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경북정체성에 대한 학술적 토론과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한 것이 빗나가고 있었다.
이어 기조강연에 나선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북정체성 포럼의 창립의의를 일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큰 우려와 걱정이 있다”고 질타하고 나섰다. 경북 영양출신의 조동일 명예교수는 평생을 한국문학과 문화연구에 천착해 온 대표적인 석학이자 지성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학자이다.
조동일 명예교수는 강연 모두발언을 통해 경북인의 특질과 특성은 대략 3가지 분야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경북정체성 연구가 혹시 과거 경북의 역사 속에서의 ‘남성문화’와 ‘상층문화’에 너무 치우쳐 가는 흐름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과 상층 중심의 보수적 정체성 재확인에 그치거나 머문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강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또한 경북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한 방법으로 호남의 학문적 문화적 전통과의 적극적인 연계와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호남의 문학특징이 “남성이 여성 화자가 되어 여성의 수난을 나타내는 것” 이듯, “영남문학은 상하의 차등을 뒤짚어 엎는 이야기 형태의 산문이 발달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대적인 양쪽의 특징을 이어가는 유산 계승작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대구)경북의 지방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학문의 중앙독점을 타파하겠다는 역사적 사명이 매우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대구경북이 뛰어난 역량을 갖춘만큼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이 품어 온 중세의 동아시아문명의 공동유산과 구비문학의 풍부한 전승력을 잘 갖추고 있어 조건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즉 중세문명의 유산과 민중문화의 저력을 각기로 이어받지 말고, 둘을 합쳐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 때라고 지적했다.
조동일 명예교수는 “(대구)경북이 선비의 고장이라면서 상층문화, 유교문화, 보수적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잘못을 범하지 말고, 하층문화, 유교비판문화, 혁신적 가치관과 생극(生克)의 관계를 가지는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자”고 제안했다. 상층에 속하면서도 하층의 반론에 깊이 동조했던 역사적 인물로는 7세기의 원효, 13세기의 일연, 19세기의 최제우가 대표적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경북정체성포럼은 이날 4개의 분과별 주제발표를 가졌다. 화랑분과에서는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부원장이 ‘화랑정신의 핵심적 요소’를, 선비분과에서는 홍원식 계명대 철학과교수가 ‘경북지역 선비정신의 핵심적 요소’를, 호국분과에서는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교수가 ‘경북인이 가진 호국정신의 핵심적 요소’를, 새마을분과에서는 정갑진 새마을운동역사연구원장이 ‘경북지역 새마을운동의 핵심적 요소’를 발표했다.
경북정체성포럼에서는 오는 11월 경 1박2일간 외부전문가 및 대학생까지 참여하는 통합토론회를 개최해 공감대를 넓히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