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혐오의 차이가 무엇인지?”
“감동과 혐오의 차이가 무엇인지?”
  • 김용준
  • 승인 2012.05.1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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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타큐영화 ‘법석골 사람이야기’ 시사회가 남긴 유감

‘자식들이 떠난 80대 노부부의 빈자리를 30년 넘게 유일한 친구이자 최고의 농기구로서 그리고 유일한 자가용 역할을 했던 누렁이와의 가슴 아픈 삶을 다루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지난 2008년 80대 최 씨 노부부와 누렁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3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던 ‘워낭소리’.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소와 아버지의 아름다운 교감. 눈물겨운 헌신을 그리고 싶었다”는 이충렬 감독의 말처럼 ‘워낭소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슴속 무언가를 던지기에 충분했던 작품이었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 ‘워낭소리’의 조연출을 맡았던 안동출신의 서명정 감독(현. 안동영상미디어센터 팀장)이 안동의 전형적인 주택가 골목인 ‘법석골’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과 이야기를 담은 휴먼다큐멘터리 영화 <법석골 사람이야기>의 시사회를 가졌다.

1시간 8분용 필름이 끝이 난 뒤 “느낌이 어때?”라고 질문해 왔다면 대뜸 이렇게 답변했을 것이다. “감동과 혐오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냉소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왜 갑자기 몇 년 전 안동시가 수 억을 갖다 바친 영화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가 생각날까? 원이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삼은 이 영화는 ‘참 쉽게도 만들었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안동시가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안동은 「골」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특히 영남산 아래 분포된 골 중에서 시내 중심가에 가장 가까운 골이 ‘서당골’, ‘법석골’, ‘잿골’ 등이다. ‘법석골’은 안동부 서부지역으로서 통일 신라시대에 대사찰인 ‘법상사(法尙寺)’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이러한 ‘골’은 수 백 년이 넘도록 대대로 자부심을 지니고 군집을 이뤄온 동네이다.

그 많은 ‘골’ 지명 중 특히 ‘법석골’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로 선정되어 개인적으로는 시샘말로 ‘안태(安泰)’ 고향이야기요, 과거 40 여 년간 자라고 생활해 왔던 곳이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굉장한 관심과 기대가 컸다. ‘법석골’의 역사를 먼저 가름하기 전에 그곳에서 한 번쯤 거주 생활을 해왔던 경험을 가진 주민들과 안동여고, 안동여중, 이웃 경안고를 다니면서 학업을 했던 수많은 하숙생과 자취생들, 특히 나와 같이 ‘법석골’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생활했던 추억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법석골 사람이야기’ 얘기가 영화의 제목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에 굉장한 관심과 함께 추억을 회상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서명정 감독은 2010년 4월부터 2011년 4월까지 1년의 촬영기간과 1년의 편집을 거쳐 2년에 걸쳐 이 작품을 제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젊은 감독이 긴 시간을 투자해 안동이라는 중소도시의 골목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 노력은 크게 평가해 주고 싶다. 하지만 영상에 담으면 모든 게 다큐영화이고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다가온다. 그럼 감독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담으려 했는가?

감독은 ‘보통 안동사람들의 향기로운 삶의 이야기와 마을에서 이루어진 이웃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관찰하는 느낌’으로 ‘평범하지만 개성이 넘치고,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아픔이 있지만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통 안동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석골 사람이야기’에는 오랜 역사의 ‘법석골’ 사람, 즉 인물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냥 그곳에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흘러 들어온 몇몇 가구의 궁핍한 삶에 카메라를 들이 대고 있다. 단지 ‘법석골’ 내의  슈퍼마켓 주인이야기와, 그 이웃 아줌마, 세탁소의 주인 이야기로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 아쉽다. 법상 상일 아파트에는 아직도 많은 원조 법석골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논골’에도 있고 ‘포도나무골’에도 터줏 법석골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임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몇몇 가구의 사람이야기로 제목을 제한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다큐영화 ‘법석골 사람이야기’에는 이 공간과 장소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철저히 배제돼 있다.

또한 ‘법석골 사람이야기’는 그 몇몇 단정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해 자칫 안동사람 전체의 일상적인 생활상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왜곡하기에 충분하다는 데에서 그 두려움이 앞선다. 물론 골목의 삶에는 신산스러운 일상의 삶에서부터 가난하지만 품의와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상의 문화가 혼재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궁핍과 가난하다 못해 '날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그 몇몇의 사람들만의 삶인가에서 의문점은 더 커지고 있다. 골목에는 다 그런 사람만 살고 있을까?

‘안동의 중년남자(남편)는 수구보수에다 여자를 천하게 보는 사람들 천지다. 안동의 여자는 나이가 들면 다 드세 지고 서방보기를 뭐 보듯 할까?’ 등장인물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들이 자칫 그들의 얘기가 곧 ‘법석골’ 주민들의 일상적인 애기인 것처럼 전파될 수 있다. 보통 안동사람들의 가정에서는 일상적으로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라는 식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편집과정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싶다. TV방송국의 ‘인간극장’류 영상물도 이렇게는 촬영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대화를 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거친 대사들이 많다. 만일 이 영화를 ‘법석골’ 주민들을 초대하여 시사회를 가졌다면 주민들의 반응이 어떨지에 대해 굉장한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물론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면 부정적인 사물을 다루며 긍정적인 승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동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변두리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선 다시 한번 재고돼야 할 것이다. 변두리 문화를 일상의 삶이라고 대표발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두리는 자기도 모르게 중심을 지향할 줄 알아야 한다. 그대로는 그냥 변두리일 뿐이다. 천민과 천박이 혐오로 이어지는 느낌을 이 다큐영화에서 느꼈다면, 너무 단편일률적인 감상일까?

전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워낭소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남겼는지, 아직도 그 여운이 가슴 한 구석에 아련히 자리 잡고 있다. ‘법석골 사람이야기’를 보고 '워낭소리'가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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