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금없이 민주주의의 개념을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요즘 세간에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논쟁에 가세하기 위함은 아니다. 민주주의 제도의 허점과 이를 감시하고 바로 보완해야할 제도적 장치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최근 안동지역에는 괴문서 사건이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한 적이 있다. 이 문건에 담겨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안동이 왜 이렇게 비겁하고 추악한 도시로 전락했는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
안동의 경우 이번에 불거진 괴문서 건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법당국에 접수되는 고소와 고발 건수가 전국에서도 상위권에 꼽혀왔다. 이렇듯 고소와 고발이 남발되는 것도 모자라 괴문서까지 나도는 일차적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파이’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나눠먹어야 할 사람이 많음을 의미한다. 즉 먹어야 할 사람은 많아진 반면, 나눠야 할 파이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았던 까닭에 누군가는 굶주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빚어낸 결과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파이를 키우지 못한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최근에 알려진 것을 포함해 그 이전까지 모두 세 번의 괴문서가 시장실과 국회의원 사무실로 날아들게 만든 구조적인 원인은 또 어디에 있을까?
이는 복잡한 현대사회의 구조 탓에 도입된 대의 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에 문제점도 한 몫을 했다. 앞서 언급된 사전적 의미와 같이 현대사회는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다수 지배의 원칙에 따라 시민이 직접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차선책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의사를 결정하고, 향후 시민들로부터 이에 대한 평가를 받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됐다.
각설하고 이 대목에서 괴문서와 간접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면 이렇다.
흔히들 ‘포플리즘’과 ‘벤드웨건’ 등과 같은 단어를 심심찮게 접했을 것이다. 이 모두가 공정한 선거를 명목으로 친절(?)하게 도처에 지뢰밭을 만들어 놓은 선거법 탓에, 주민들의 대표를 자임하면서 선거에 나선 인물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맹점에서 발생한다. 중앙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을 수 있는 선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방에서 치러지는 대부분의 선거의 경우 후보에 대한 정보가 입소문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 보니 선량들의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특히 기득권 유지와 탄탄한 조직력만 전제가 된다면, 여론을 왜곡시키고 조작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란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사례를 든다면 노인정에 대한 에어컨 지원과 관련한 문제가 그렇다. 국회 속기록에서 드러나듯 이 사업은 에너지관리기금에서 지원되는 사업으로, 지식경제부가 전기 소비량이 적은 제품에 대한 판매 정책의 일환으로 편성한 예산이다. 사업비는 국비와 지방비 각각 50%씩 부담하는 것으로 추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을 비롯한 북부지역에는 “A의원이 경로당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이 예산을 심의한 상임위의 속기록을 살펴보면 해당 의원들은 말 그대로 ‘편성된 예산안을 심의한 수준’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전파된 입소문이 상당부분 왜곡됐다는 사실은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감시 기능들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헛점을 보완할 기능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면 왜곡된 여론의 형성이 가능했을 지 되짚어볼만한 대목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괴문서도 마찬가지다.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해결책으로 언제든지 언론의 순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과연 괴문서가 세 번씩이나 시도되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사전적 의미의 엘리티즘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포플리즘의 보편적 의미인 대중적 선동을 위한 인기영합 위주의 정치형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또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식의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지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리를 한다면 “언론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산물임을 내가 먼저 깨닫고 반성하자”는 아주 단순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특정 정치세력에 의한 여론의 왜곡이나 조작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질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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