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1985년 대학1학년 때였으니까, 정말 한참이 지났다.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전수받던 ‘민속극연구회’에 가입했으니 그 인연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울대 조동일 교수가 편낸 『탈춤의 역사와 원리』를 교양도서로 읽으며 전승되던 각 지역 탈춤들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당시 민중들의 자각의식을 더 풍부하게 반영하고 있었다는 인식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회마을 입구에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관습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게 다반사였다. 전공자의 길을 가고 싶었으나 학생운동에 뛰어든 후 ‘철저한 비전공자로서의 길’을 걷다보니 전문지식은 아예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문화에 대한 내 지식이 그 정도라는 어설픈 고백이다.
부용대를 내려와 옥연정사 문을 관통해 지나면 부용대 아래 절벽 중턱이 나온다. 오래전부터 부용대 저 아래쪽에는 절벽에 바짝 붙은 절벽 위와 아래사이로 바위틈새 오솔길이 있었다. 일행인 권기환이 형 겸암과 아우인 서애가 함께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막상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다가왔다. 비좁은 돌길바닥에 낙엽이 깔려 있어 조금만 흐트러져도 내 몸뚱아리는 시퍼런 강물로 추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고위험이 높았지만 건장한 남자 둘은 조심스럽게 가 보기로 한다. 걸어보니 위험하다 못해 아찔해진다. 돌아갈 순 없다. 오늘의 진짜 목적인 병산에서 하회로 걷는 4km, 이 길이다. ‘유교문화길’로 명명되어 있다. 얼마 전 안동문화지킴이에서 이 길을 걸었다고 하니 기대를 해 볼 수밖에…. 지난해 이맘때다. 도산구곡문화연대를 따라 도산면을 지나 청량산 자락에 터 잡고 있는 농암종택 뒷산으로 나 있는 ‘퇴계오솔길’을 간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뿌옇지만, 학소대 정상에 섰을 때 눈 아래 펼쳐진 강산은 장관 그 자체였다. 내 눈 안으로 들어오며 찰칵거리며 찍혔던 영상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언제라도 재생이 되고 있었다. 모두가 ‘길’을 이야기한다. 올레길, 지리산둘레길, 무슨 무슨 옛길들. 길을 논하고 있는 시대이다. 문경 옛길박물관 학예연구관 안태현 후배가 읊조린 말이 기억난다. “개발도상국을 지나던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악을 쓰며 뛰었습니다. 스피드가 강조됐죠. 마라톤, 등산, 권투로 상징되는 행위들은 당시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하지만 3만불 국민소득(분배복지는 둘째로 치더라도?)을 바라보는 지금은 사람들의 욕구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보다는 ‘걷거나, 둘러보거나, 더불어’ 느끼는 행위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목적지만 보고 뛰어 온 후의 승리감은 잠깐의 환희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딛고 있는 땅과 함께 호흡하며 천천히 가는 것을 배우는 것을 수긍할 때도 되었다.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상승시켜 주는 수평네트워크의 길을 걸어가는 시대적 트렌드는 ‘걷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당한 지 오래되었다. 1시간 정도 걸으면 하회마을이 나올 것이다. 병산에서 막 발걸음을 떼자마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반기고 있다. 양 팔을 비스듬하게 들고 춤사위를 시작한 듯하다. 오른쪽에는 화악서당이 무심한 나그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서당 입구에 자갈을 덮고 있는 샛노란 은행나무 이파리를 바라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즉석에서 시적으로 풀어 주며 들려줄 시인 한 명 없다는 게 아쉬웠다. 눈을 들어 강산을 보며 걸었을 뿐이다 평일인데도 하회는 늘 소란스럽고 북적거린다. 버스를 타고 입구까지 나가는 것도 영 마뜩찮다. 왜 이리 됐을까? 유명세를 치르는 동안 한번 온 사람들이 또 오고 있을까. 잘 모를 일이다. 오늘 걸은 이 길은 세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시골 사람의 눈과 도회지 사람의 눈은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약간은 허전한 길이다. 그래서 한번 더 걸어보고 싶어진다. 다음에는 또다른 ‘산길’을 걸어서 이 코스를 밟아볼 일이 남아 있다.
강 건너에서 하회를 바라보니
딱 일주일 전이다. 문화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 권기환이 찾아왔다. “하회마을을 안에서만 보려고 하지 말고 밖에서 둘레를 보는 게 어떨까?” “그래, 그거 좋지.” “그럼, 한번 가서 걸어 봅시다?” “좋아, 일단 가 보자.” 둘이 함께 걸어보기로 약속했다.
10월 27일 목요일 오전 10시30분. 안동시 풍천면 소재지를 지나 광덕교를 건넜다. 광덕삼거리를 지나자 겸암정사이다. 그리고 닿은 곳이 부용대. 시야에 조금 뿌옇게 다가오지만 강 건너 하회마을 풍경은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충효당이 보이는 쪽으로는 단체여행을 온 학생들이 떼를 지어 걸어오고 있다. 떠들썩한 목소리를 들어보니 중학생 정도일 것이다.
“가만있어 보자, 강물이 어느 쪽으로 흐르고 있지?” 순간 헷갈리기 시작한다. 부용대 왼편에서 흘러오는 건가? 아니었다. 아래 물 흐름을 보니 우리가 서 있는 오른쪽에서 흘러 내려와 마을을 감싸고 부용대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왜 이런 것 조차 헷갈리는 것일까?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지만 난 속으로 조금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강은 모래톱이라는 자식을 잉태하고
부용대에 서서 하회마을을 바라보면서 문득 ‘왜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하회마을의 가옥들 사이로 만 다닐까?’ 그 옆에 서 있는 산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으니 만송정 우측으로 퇴적되어 쌓인 모래톱이 작은 섬을 형성하고 있었다. 휘감아 돌며 흐르는 시간동안 강물은 또하나의 모래톱이라는 자식을 잉태해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모래톱의 한쪽 팔은 물속에 손목을 담근 채 지나가는 강물들에게 물장난을 치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상상이 들었다.
하회에서 병산서원으로 걸어보자
다음 계획은 나룻배를 타고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것이다. 허나 단체예약만 가동한다나. 또 하나 계획은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쪽으로 강을 따라 걷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차량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오늘만은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걷자고 맘을 먹었다. 차를 몰아 병산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모래사장과 강을 내려다보는 저 병산벼랑은 언제 봐도 절경이다. 벼랑아래 물길을 머금은 이곳에는 수많은 유정을 품고 지나간 사람들의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하다.
나란이 걷는 것이 시대적 트렌드다
저 멀리서 강물은 아스라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는 황량하고도 거친 습지만 덩그렇게 놓여 있다. 그래도 흰빛 자태를 자랑하며 군락을 이룬 갈대밭이 있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저 고마운 맘이 생긴다. 걷기가 끝난 후 만난 친구이자 하회마을관리사무소 손재완 박사는 “습지엔 고라니가 많을 뿐만 아니라 멧돼지가 출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워낙 넓게 퍼져있는 습지는 인간의 눈에는 썰렁한 듯 했지만, 강과 물 사이에서 존재가치로서의 정화작용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계속 산 아래 자락을 타고 오솔길을 걷는다. 이윽고 경운기가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보인다. ‘그래, 이런 길이어야 나란이 걷는 맛이 나지.’ 나지막한 탄성을 토해 본다.
산 안쪽으로 난 말굽모양처럼 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걷다 보니 야트막한 고갯길에 올라섰다. “야아, 그냥 보기에 딱 좋다.” 때마침 살짝 배어나온 땀을 식혀 주는 소슬바람까지 불어 준다. 사실 이 맛과 기분으로 산길을 돌고돌아 걷는 것이 아닌가! 왼편으로는 가을정취를 풍기는 야스레한 야산이 넉넉하게 있어 좋고, 눈앞에는 물과 습지가 매끄럽게 부딪쳐 주지 않는가. 오른편으로는 다정스럽게 밟아 줄 길이 기다려 주니 더욱 신날 뿐이다.
잠시 내리막길을 걷다가 문득, 그냥 바라보니 저기 하회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얀쌀로 쌀로 도정과정을 거칠 누런 나락과 저 멀리 부용대가 든든한 몸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하회마을 뒤편은 누런 논들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마을을 먹여 살려주는 전답이 없었으면 하회는 초라했을 것이다. 넉넉한 등짝이 있어야 똑똑하고 반듯한 머리와 얼굴이 나올 수 있는 법이다. 병산에서 하회로 막 진입했을 때는 편안하게 엎드려 있는 사람의 형상을 떠올려도 괜찮을 듯 했다. 지치지도 않고 도착한 딱 한 시간 거리. 아쉬운 것은 강 옆을 따라 하회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배가 고팠다. 이 길은 ‘뱃나들길’로 불리고 있는데 다음에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