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이 바라는 방송, 지역민을 위한 ‘
우리나라 남한반도에서 변방은 어디일까? 강원도 인제 원통의 철책선 부근, 경북 봉화 우구치 마을, 전남 신안 앞바다의 어느 작은 섬.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봤을만한 오지 중의 오지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송에도 변방이? 혹시나 부산이나 대구 같은 대도시에 있는 방송이라면 오지라는 수식어는 안 붙여도 되지 않을까? 몇 백 만의 시청권을 가진 방송사에 변방이라는 이름을 달아도 되는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몇 군데 찾을 수 없는 수도권집중이 가장 심화된 곳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 어떤 분야에서도 분권화된 형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중앙으로의 집중 정책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은 중앙 집중 현상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곳이다. 정권의 특혜로 탄생한 민영방송 SBS를 포함한 거대 방송사 세 곳이 우리나라 전체 방송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31일, ‘종합편성채널(종편PP)’의 무더기 허가로 인해 거대 지상파와 맞먹는 영향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른바 ‘조중동 방송’이 새롭게 탄생했다. 이로 인해 소위 말하는 군소 취약매체는 그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전망이 곳곳에서 튀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이 우리나라에는 지상파 3사를 제외한 나머지 방송사는 가 시청권의 규모와는 별개로 변방으로 취급받고 있다. 게다가 이제 유료채널 의무편성이 법제화 되어 있는 종합편성채널까지 가세하게 되었으니 점점 더 변방으로 밀려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니 밀려나다 못해 방송광고시장의 교란으로 고사 위기에 처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서 논의하는 용어 중 소위 말하는 ‘군소 취약매체’라는 방송사는 CBS, BBS, PBS, 원음방송 등 종교방송과 교통방송, 경기FM 등 소규모의 라디오 방송, 한정된 지역 내의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 그리고 지역민방과 지역MBC를 포함한 지역방송이다. 그렇다면 이들 군소매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여러 분야의 목소리를 담아내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도록 전파를 통해 그 몫을 수행한다는데 있다. 즉 사회를 구성해 내는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뜻일 것이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사회의 여러 요소들이 민주화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일 것이다. 특히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전 식민시대나 군사독재 시절처럼 획일화된 가치를 받들고 지향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 얼마나 무미건조한 세상이 될 것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화다양성의 확보’는 지역방송이 지켜내고 발현시켜 나가야할 가장 큰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중앙 집중화 현상이 심각한 사회에서는 지방분권이라는 명제가 의미 있는 가치로 자리매김 되어야 하고, 실천력을 갖고 제도화되어야 집중화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고 균형발전이 가능한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역할의 중심축에 지역방송이 있어야 한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절반이 살고 있는 곳곳에서 그 지역민들이 살고 있는 모습들이 그 지역의 방송을 통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역방송의 역할은 어떤 형태의 구체적인 실천이 담보되어야 할까? 우선 제작비와 여건의 한계는 분명히 있겠지만 주어진 현실 속에서 보도와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집중된 제작역량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좀 더 많은 지역의 다양한 소식들을 반영하고 분석해 보도해야 한다. 비록 짧은 시간에 방송하는 것이지만 뉴스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이미 검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소화해 내야 한다. 지역의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또 가져야 하는 지방정부의 시·군정 활동 점검이나 기초의회 활동 감시 등의 역할을 지역민과 함께 방송이 그 역할을 해 내야 한다. 또한 여러 분야에서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그 지역민들에게 제대로 소개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적 소재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고품질의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의 생산이다. 역사 다큐멘터리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휴먼, 경제, 탐사·발굴 다큐멘터리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할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문화·교양 프로그램들을 진행시켜야 한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발굴해 지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회가 없거나 경제적 비용부담 때문에 하지 못했던 문화 프로그램들을 지역방송이 먼저 제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지역방송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바와 같이 방송법 상 지역 종합유선방송(케이블 방송)에 의무 편성하도록 되어 있는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 채널이 무더기로 허가되었다. 지상파와 맞먹는 영향력을 가진 종편PP에 대한 규제를 전문채널(전문PP)과 동일하게 해주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꼼수에 미디어 운동단체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에 포함시키지 않고 종편채널이 직접 광고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현재 방송되고 있는 케이블방송에 지상파와 인접한 채널로 배정한다거나, 중간광고와 의약품 광고를 허가해 주려는 등 각종 특혜를 주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11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방송광고판매대행 독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난 이후 KOBACO독점판매의 법적효력기간(2009.12.31)이 지나는 동안 국회는 대체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 ‘조중동종편’을 미디어렙 체제 안에 묶지 못하도록 하면서 광고 직접 판매를 용인해 주려고 하는 한나라당의 조직적인 지연 전술로 인해 법을 제정해야 하는 국회의 임무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10월 5일부터 종합편성채널은 프로그램 설명회를 예정해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조중동 종편이 방송광고를 직접 판매하겠다는 공격적인 선언인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는 12월 방송 개시가 예정되는 종편 채널이 공격적인 광고영업을 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과 종교방송이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종편채널이 광고 직접영업에 돌입해 시청점유율 1~3%에 달하게 되는 2년 후면 지역과 종교방송의 광고매출은 30%에서 많게는 50%까지 급감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방송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토대를 붕괴하는 결과로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지역방송에 닥친 또 하나의 위기는 지난 8월 8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승인된 진주-창원MBC의 합병 승인이다. 지역MBC에 대한 이른바 ‘광역화’는 벌써 20년 가까이 된 해묵은 논쟁이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고 보는 지역MBC의 다소 많은 듯한 ‘숫자’에 있다. 하지만 이 숫자의 축소로 과연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나 분석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선임된 MBC(문화방송)의 김재철 사장은 진주와 창원MBC에 겸임 사장을 임명했다. 이후 합병 주총을 통해 강제 통합에 나섰고, 520여 일이 넘는 양 사 구성원들과 서부경남 시청자들의 강제통폐합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김재철 사장의 사퇴쇼’에 의해 방통위가 승인을 하고 말았다. 43년 역사의 진주MBC가 문을 닫은 것이다. 무려 5만6천여 명의 서부경남 시청자들이 강제통합 반대 서명을 하고 66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통합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그 뜻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병심사위원회의 낙제점을 면하는 형식적인 심사와 여당추천 방통위원들만의 단독 표결로 합병 승인을 통과시켰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김재철 사장은 강릉과 삼척, 청주와 충주MBC의 강제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 집중이 심화된 한국 사회에서 지역방송의 존재는 문화다양성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필요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 효율의 논리로 좀 더 ‘큰 방송’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40년을 넘게 나름의 역할을 다해 온 지역방송의 문을 닫게 하면 결국 그 이익은 획일화된 가치만 일관되게 관철시키면 통치가 쉬워지는 중앙집중론자들과 그 가치관에 기초해 활동하고 있는 현재 집권세력일 뿐이다. 지방자치와 분권, 국가균형발전의 논리는 그야말로 변방에 머물게 될 것이다.
위기에 처한 지역방송을 되살려 제자리를 찾게 하기위해 정말 중요한 점이 있다. 지역방송에 종사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피나는 노력일 것이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기득권을 버리고 자칫 오류에 빠지기 쉬운 선민의식을 과감히 떨쳐버린 다음 지역방송이 해야 할 고유의 역할과 의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지역민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관점의 소식들을 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역의 시청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지역방송에 요구해야 할 것이며, 거기에는 지역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자긍심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