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주창했다. 어쩌면 이 주장은 문명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문명과 문화, 그 모든 것은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은 인본주의 사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단적인 예로 산업혁명을 들 수 있다. 서양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 그대로 “자고나면 세상이 변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문명은 빛의 속도로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나 문화가 뒷받침 되지 못한 상태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문명은 곳곳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즉 인문학을 근간으로 한 문화의 부재 속에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현실은, ‘효율적 생산성’과 ‘극단적인 이익’이 곧 최상의 가치로 왜곡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함께하기 위한 ‘기다림’의 미덕보다, 약육강식이 강요되는 각박한 삶이 빚어낸 부작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서양 문화권에서 동양 문화권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정신문화를 배우기 위한 노력의 흔적 속에서 읽어낼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를 시작하는 화두로 정신문화를 강조한 안동은 시대를 앞서가는 ‘아방가르드’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특히 일회성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지속되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안동의 분위기는 문화를 소비하는 도시에서 문화를 생산하는 도시, 즉 ‘문화산업도시’로 도약을 위한 양적 팽창을 거쳐, 질적 성장을 알리는 결과물을 완성시켰다. 산수실경(山水實景) 뮤지컬 ‘왕의 나라’가 그것이다. 왕의 나라는 지역이 가진 역량을 결집시킨 성과물이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지역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스토리로 완성시켰다. 여기에는 ‘사모(思慕)’와 ‘락-나라를 아느냐’ 등의 실경 뮤지컬에서 쌓은 경험이 기초가 됐다. 여기에다 경북도와 안동시, 그리고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영남일보와 <재>안동영상미디어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한 대규모 실경 뮤지컬 왕의 나라는 최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역의 문화적 일자리 창출(One Source Multi Use·하나의 소재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기획, 연출, 배우, 무대, 음향 등의 분야에 연인원 300여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배우와 스텝 등 뮤지컬에 참여하는 인력 대부분을 지역의 역량으로 해결했다. 또 공연기간 중 함께 진행되는 전통체험여행 테마파크사업과 연계시킬 경우, 총 500여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된 셈이다.
이러한 노력 속에 완성된 왕의 나라는 700여년 전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안동 몽진(蒙塵), 즉 파천(播遷) 속에서 비롯된 공민왕과 노국공주, 여랑과 홍언박의 애절한 사랑, 그리고 안동 민중들의 희망을 담아냈다. 이렇듯 지역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대서사시를 노래하는 왕의 나라는 안동민속촌 성곽에서 막을 올린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민속촌 일대에 대한 재생 프로젝트 성격도 겸해 일석다조의 효과를 넘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속가능한 역량을 키워나가는 데 집중해야할 시점이다.
이제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은 더 이상 문화의 변방에서 문화를 소비하는 데 머물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지금까지는 지역의 문화생산력이 지역민의 잠재의식 속 깊숙이 내재된 채 망각돼 왔지만, 왕의 나라는 이를 분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지역민들은 스스로 지역문화에 자긍심을 가지고, 지역 문화산업의 출항을 위해 닻을 올리는 단계에 있다. 산수실경 뮤지컬 ‘왕의 나라’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할 뿐이다.
<마창훈 /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