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입하고 있는 팬까페에 들렀다가 '기축년'을 맞아 회원들이 소 얘기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 옛날 생각이 문득 나서 적어본 글입니다. 꽁트라고 하면 될까 몰라. 아참 '중앙선'은 제가 잘 아는 친구놈 ID인데요. 어릴 적에 집에 소 한마리 있느 것이 소원이었다나요. 자 그럼 제 친구 '중앙선' 약이나 올려 볼까요.
잘 들어봐봐.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아마도 박통 성질 죽기 전인 1977년쯤 되려나. 우리집에는 소 한 마리 있었지. 우하하하~ 중앙선님 부럽지.
당시 우리 아부지 안동에서 그래도 재산 좀 있다고 머리에 뽀마드 바르고
새까만 나이방(색안경) 끼고 삼천리표 신형 자전차 타고 다녔지.
보는 사람마다 "아이고 임 주사님 왔니껴"하며 인사들 하곤 했지.
잘 나가던 우리 아부지, 볕좋은 가을날 하루 아침에 쫄딱 망했거든.
다음 날 새벽에 안방 방바닥에 빚쟁이들에게 집문서 땅문서랑 사죄편지 남기고
경기도로 야반도주 했지. 그리고 그 이듬해 봄이었는데,
(저 쪽에서 울 아부지 왈, 저 놈이 집안사 다까발기네, 아휴~ 남사시려~)
파리채로 장롱 밑의 동전까지 다 긁어서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우시장에 송아지를 사러 갔어.울 엄니하고 둘이 30리 길을 걸어서 말이야.
그래도 소 한마리 정도 있으면 자식들 하고 최소한 굶어 죽진 않을 듯 해서였겠지.
잘 키워서 새끼도 내면 몫돈이 되니까 우리형 중학교도 보내고...야무지게 그림을 그렸겠지.
그 날, 송아지 사러 간 엄니 아부지를 목이 빠져라 과수원 뚝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해가 다 떨어져 어둑어둑 할 때가 되어서야 저 아래 개천구비로 가물가물 돌아오르시더라고.
물론 멀리서 한 눈에 봐도 분명 '소'가 분명한 듬직한 짐승 한 마리를 떡하니 앞세우고 말이야.
당연 신났지. 펄쩍펄쩍 뛰었어, 형하고 둘이서.
근데 이 놈의 짐승이 집마당으로 기물기물 기어드는데 말이야,
뭔가가 이상해. 걸음걸이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인상까지 뭔가 아니다는 느낌이 팍 오는데,
좌우간 '썸씽 뤙' 이더라고. 그래서 귀떼기도 땡겨보고, 볼따구도 때려보고 하는데,
이 놈이 지깐 송아지 놈이 나이를 먹어봐야 만 1살 미만일텐데, 상판이 좀 삭아보이더라고.
울 엄니 아부지도 밤새 같은 걱정을 하시더라고, 잠도 못 주무시고 말이야.
얘기가 그렇더라고. '아니 멀쩡하면 왜 값이 그래 싸겠냐고', '뭔가 이상타'고. 새복까지 궁시렁 궁시렁...
그래서 다음 날, 이웃 배과수원 '소의 달인' 고씨 영감님이 초빙됐지. 진실은 밝혀야 하니까 말이지.
이북 출신인 우리의 고씨 영감님 딱 3초간 보시더니 왈,
"가슬라므네 봅새...에이, 둘암소임매!"
"둘암소? 그게 뭔교?"
아부지 눈 똥그레졌지. 생전 소라고는 안키워 봤으니 '둘암소'가 뭔지 알 턱이 있나.
"이 간나, 새끼 몬까"
우리의 고 영감 바로 그 놈의 소 이빨을 까보이며,
"나이도 세 살이고만 거져, 봐봐"
"에! 세 살!, 그믄 임마 송아지 아이고 에민교?" 그리고 두 분 아무말 없으셨어.
여기서 끝냈는데 ID 아랑아빠님이 요래 묻더라고요.
궁금해서 다음으로 검색하니 이래 나오네요.
" 새끼를 낳지 못하는 소. "
그래가 우찌 됐는교?
그래서 제가,
가을까지 풀 뜯어 멕이고, 죽 쒀 멕이고 해도
눈깔만 멀뚱멀뚱, 햇바닥만 낼름낼름, 당최 크질않아.
까죽만 쭈글쭈글해지고...
아부지 한 숨 푹~, 결국 내다 팔았지.
살 때 값 반으로 말이지. 젠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