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
구제역파문으로 대한민국이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축산농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구제역 관련 직접적인 피해 액수만 2조원이 넘고 기타 파생될 피해액은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하물며 정부 및 각 지자체에서는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구정연휴에 고향 길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난리다.
지난 25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구제역확산 원인 및 전파경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정부의 초동대응 미비로 구제역 조기진화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의 간이검사만 믿고 시간을 허비한 것과 안일한 방역에 따른 정부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그리고 추후 구제역 관련 중앙정치권에서의 논란이 일 경우 책임공방으로 인해 그 불똥은 자연히 구제역 최초발생지인 안동시로 튀어 시 역시 자유스럽지 않은 부분이다.
또한 구제역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베트남을 다녀오면서 기본적 의무인 소독을 받지 않은 지역 축산농의 도덕적 해이와 정서적인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변명의 여지를 떠나서 지역 축산업을 대표하고 있는 현 축협조합장의 문제인식 또한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구제역 발병에 대한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비난의 화살을 받아오며 심적인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 이해는 하겠지만 책임지는 모습의 부재가 아쉽다. 현재까지는 법적인 책임에서 무사할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보여준 도덕적 모습이나 지역 정서를 고려하자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부분이다. 대의원총회 결과에 따라 거취표명을 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인 동시에 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안동지역에서 3선 의원을 역임한 전직 국회의원이 지난 총선 전 석고대죄(席藁待罪) 한 예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비록 그 진정성에 대해 입장에 따라 해석이 분분했었지만, 시민들의 가슴속에는 분명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현 축협조합장은 지금까지 구제역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시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 한 마디 없다. 그런 모습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당사자는 오랜 세월 축산업을 해오며 온갖 고생을 다해 부와 명예를 쌓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런 만큼 자신이 누린 명예에 걸맞게 그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할 것이다. 인정(人情)을 먹고 살아온 좁은 지역사회이다 보니 ‘불편한 진실’에 누구하나 나서기가 힘든 게 사실이고 현실이다. 혼란에 빠진 지역위기 앞에서 누구하나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상한 지역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과연 먼 나라만의 동화인가.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