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여 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한국의 위상을 지키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무지막지한 대량 살처분이라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서게 된 공무원과 농민, 자원활동가들은 단순히 놀라움을 넘어 아연실색과 경악 그 자체를 목격했다. 그나마 지켜오던 청정자연 속의 안동이라는 지리적 자부심과 선비의 고장 안동인이라는 정신적 자긍심은 큰 상처를 받았다. 비난의 목소리가 안동을 향해 집중하고 있다.
사회적 상벌체계를 분명히 세워야
‘큰 불이 났으니 우선 급한 대로 먼저 꺼야한다’는 엄중한 사태에 대해 시민 모두가 동의했고 합심했다. 아우성처럼 터져 나오던 요란한 ‘말’과 무성한 ‘괴담’은 자제했다. 희생이 있었지만 안간힘을 쓰며 참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안동지역은 모두가 피해자로 전락했다. 자식 같은 가축들을 생매장 당한 농민들의 원통함과 애통함은 물론이고, 시민 모두의 가슴에 큰 상심의 구멍이 뚫렸다. 경제와 관광산업을 삽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일순간에 무너져 버린 듯 대중공황 사태까지 감지되고 있다.
지금부터는 2차 발병 방지와 함께 대수습에 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먼저, 발생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꼭 진단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절대적으로 높다. 1차적 원인은 무엇이고, 진행경과는 어떻게 됐는지 따져야 한다. 그리해야만 연대감을 띠고 수습과 재건에 모두가 동참할 수 있다.
그리고 난 뒤, 사회적 상벌체계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칭찬과 꾸중이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먼저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달게 받겠다고 고백해야 한다. ‘내 탓이다’고 참회해야 한다. 그 집단이 ‘대규모 공장형 축산업종사자인가?’, ‘늘어나는 무역량에 몰두해 온 정부인가?’, ‘싼 고기를 탐닉한 우리인가?’ 논쟁해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유혈사태를 정당화해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론상’ 준비를 수십년 했다던 당국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 할 때다
혹시 “치명적이지 않은 질병문제에 대해 자칭 선진국을 자처하는 정부가 대량살상 말고는 다른 대응방법이 정말 없었을까?” 구제역은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라, 호주머니만 털어가는 생물학적 침입자였지는 않았을까 되물어 봐야 한다. 비록 소수의 충고와 의견이라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동물을 대량으로 가두어 사육하면 과밀환경에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바이러스나 세균감염에 대항할 선천적 면역체계가 완전히 무너진다는 충고를 적극 재고해야 한다. 엉망진창으로 키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부터라도 축산산업의 규모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일반 위기상황이 범국가적 재난으로 확산되고 있다. 총체적인 방역체계의 허점, 대규모 공장형 소수 축산종사자 윤리의식 부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무리지어 출몰하는 생물테러리즘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졌다. 사시사철 언제든지 가축전염병이 촉발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대로 가면 국가와 지방정부의 입지가 불안해진다.
무역 일방주의가 전 세계에 온갖 종류의 병원균을 퍼뜨렸다면, 공장형 사육방식은 병원균을 배양하고 집중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제대로 펼쳐지기를 학수고대하자. 그러나 동시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먹는 방법, 물건을 구매하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을 바꾸어야만 그 공백을 막을 수 있다. ‘글로벌 쇼핑’이 낳은 참담한 결과에 대해 개인적, 지역적 차원에서 활동하고 생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