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동화나라’ 공사 부실의혹 짙다!
폐교 리모델링비 31억 부었지만 어린이눈높이 실종
엉터리 설계, 시공 책임! 그 시작은 어디인가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 선생은 생전에 작성한 유언장을 통해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고 언급했다. 2007년 5월17일 권 선생이 타계한 후, 고인이 남긴 유언을 계승하기 위해 2008년 추모1주기를 맞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재단법인)’이 설립되었고, 안동시 명륜동에 임시로나마 유품전시관이 선을 보였다.
이때부터 <권정생 어린이 문학관>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장소 선정을 놓고 몇 개 방안이 언급됐지만, 생전에 살던 생가터에서 10분거리에 위치한 구.일직남부초등학교(일직면 망호리)를 매입해 활용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이 폐교가 있는 동네는 권 선생의 작품 [몽실언니]의 주요무대 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폐교의 매각,매입 건을 둘러싸고 지역정치권과 행정권, 그리고 문학계의 노력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1년 11월 안동시와 교육청 사이에 매입계약체결이 성사됐고, 2012년 3월부터 실시설계용역 시행이, 6월부턴 공공디자인 심의신청이 진행돼 연말부터 리모델링 공사가 착공되었다. 2013년 12월에 준공이 되어 2014년 8월 <권정생 동화나라>는 개관식을 가지게 된다. 위탁운영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으로 선정되었다.
동화나라 컨셉ㆍ디자인, 눈씻고 봐도 안보인다
부실논란 소식에 뒤늦게나마 문학관을 방문한 취재팀의 눈에는 “과연 이곳이 예산 31억원이 투입된 권정생어린이문학관이 맞는가? 20세기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위대한 아동문학가의 정신에 걸 맞는 취지와 내용을 담고 있는가?”하는 강한 의문점만 가득차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린이문학관’ 답게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리모델링한 ‘동화나라’의 컨셉과 디자인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게 취재팀의 평가이다.
우선, <권정생 동화나라>를 찾아가기 위해 일직면소재지를 지났지만, 초입단계에서부터 헤매기가 십상이었다. 표지판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직중학교를 지나 우측아래 도로 쪽으로 방향을 내려 지하굴다리를 지나서도 거의 1km 농로를 들어가야 했다. 어린이를 태운 단체버스가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마저도 수운종택 앞에 버스를 세우고, 도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운동장 앞에 섰을 때 깜짝 놀란 점은 ‘원래의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했다’는 것에 도저히 동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리모델링이 뭔가? 낡고 불편한 건물을 크게 개선시켜 사용하는 이들이 더 편하고 깔끔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닌가. 교문에서부터 원래 교실건물이 있는 곳으로 운동장을 반으로 갈라놓은 보도블럭길이 버젓이 서 있었다. 운동장은 그 자체로 아이들이 뛰어놀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운동장의 기능을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체험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발상이 충분한데도 조악하기 그지없는 개악된 야외공간으로 돌변해 있었다.
그리고 보도블럭이 끝나는 곳에서 건물방향으로 테크계단을 설치해 놨는데 이것 또한 꼴불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린이들을 주요 참여 및 고객층으로 삼겠다는 체험시설에 대형 테크계단을 층층으로 만들어놓은 발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난감해졌다. 테크계단은 어린이가 올라가기에 보폭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미끄럼방지틀이 아예 없어 눈비에 취약한 위험시설로 판단될 뿐이다. 안전사고의 위험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건물과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곳곳에 빗물배수통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토사유입과 지반침하 현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맨홀 주변에도 지반이 침하되고 있었다.
전시관은 비좁고.... 19세기 방식에 아동문학체험 가능한가?
문제점은 건물의 실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먼저, 권정생 ‘전시관’은 교실 두 칸을 합쳐서 그의 생애와 문학정신을 관람할 수 있는 일종의 체험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빽빽하게 씌어진 글씨와 조악한 실내인테리어에 전시관은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거기다가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이 넓은 대지와 건물에서 전시관은 사람의 몸에 비유할 때 머리에 비견할 수 있다. 좁아터진 전시관에 전시관의 콘텐츠의 부실함은 일반 상식인의 시각으로 살펴봐도 전혀 창의적이지 못할 뿐이었다. 동시에 21세기형 디지털적 감각과 천연칼라 색감에 익숙해져 있는 어린이들의 눈에 이 전시관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구를 했을까 하는 데에 이르면 큰 회의감만 밀려왔다.
권 선생의 유품과 책 등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 양쪽으로 일반 학교유리창이 그대로 설치돼 있다. 일반창문은 쉽게 파손이 된다는 점에서 유물과 유품의 훼손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입주할 당시 책이 그대로 쌓여있어 철제앵글과 합판으로 임시책장을 만들어 책과 유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평생 동안 권 선생의 손때가 묻고 보듬었을 귀중한 책들과 유품이 허술하게 방치되고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1층에 장애인 남·녀 화장실을 설치해 놨는데, 운동장에서 본관진입로를 잇는 이층규모의 대형 테크계단이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2층 숙소로 올라가는 통로는 계단뿐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아이들의 평화와 생명정신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권 선생의 정신과 취지는 <권정생 동화나라> 건물과 대지 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2층 건물공간에는 8개실의 어린이 숙소가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외벽에 찬바람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1개실에 15~20명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인데, 화장실과 세면시설이 너무 비좁았다. 또한 온수사용에도 문제점이 발생해 있었다. 일례로 오후 5시부터 20여 명이 단체숙박을 시작하려고 하면, 오전 11시부터 중앙난방식 보일러를 4~5시간 가동시켜야 물이 따뜻해져 온수사용이 가능해진다고 전했다.
엉터리 설계, 시공 책임 그 시작은 어디인가
어린이문학 테마파크 목적에 부합할 지 재검토해야
그래도 지난해 8월 개관이후 권정생을 그리워하고, 그의 문학세계를 체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람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월평균 5백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안동시의 현재 담당부서에서는 “부실한 요소가 많은 것을 인정한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지난해 안동시의회 사무감사에서 강한 질책이 있었다고 확인되고 있다. 안동시는 △진입로 신설 △건물 내 편의시설과 부대시설 확충 △조경공사 등의 개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소 6개월 정도면 어느 정도의 개선여지가 있다는 답변이다.
그러나 지역신문 6개사의 공동취재 과정에서 중대하고도 근본적 결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권정생 동화나라> 개관에 투여된 비용이 31억이다. 당초 <권정생어린이문학관>을 실제 건립하던 시기에 추진한 실시설계용역과 공공디자인에 대한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설계 및 디자인에 대한 컨셉이 원래부터 이렇게 조악했는지, 아니면 설계변경 과정에서 변질됐는지의 확인이 필요해진다. 또한 건립이 확정되고 설계가 시작될 때, 어린이문학관(문학체험파크)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민관 공동의 여론수렴에 최소한의 성의를 가졌던가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측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설계당시에 요청했던 사안에 대한 반영이 부실했던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둘째, 외부에서 볼 때 <권정생 동화나라>로 표방되는 이 공간과 건물에는 권 선생이 평생에 걸쳐 축적해 남긴 어린이 문학과 평화와 생명 등의 가치가 적절하게 조합돼 있는 곳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과 건물의 리모델링 과정이 불순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 완전 부실공사의 의혹이 있다는 것을 먼저 깔끔히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선(先) 해명 및 규명이 있은 후에, 후(後)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당시 담당행정가들의 실수 또는 무능이 있었다면 응당의 책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외압에 의해 공사업체 선정이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당시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도 공개를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공사업체가 리모델링 과정에 사용한 제품과 그 재질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