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 “성암(惺菴) 장윤덕(張胤德) 선생”선정
올곧은 성품으로 불의와 부정, 불법과 타협하지 않는 구한말 경북의 의병장
경상북도(김관용 도지사)는 7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로 성암(惺菴) 장윤덕(張胤德) 선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장윤덕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및 매국대신을 처단할 계획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며 300명의 의병으로 이강년 의진에 합류하여 일본군경을 대상으로 문경 갈평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어 낸 공로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7월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의 항일투쟁역사를 살펴보면 성암 장윤덕 의사는 예천 출신, 한말 의병장이었으며 본관은 안동, 자는 원숙(元淑), 호는 성암(惺菴)이며, 1872년 7월 6일 예천읍 노상리에서 장재안(張載安)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학(漢學) 수학과 예천군 수서기(首書記)를 지냈다.
1905년 12월,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상실될 위기에 이르자, 국민들에게 항일 구국 정신 고취와 친일 반역 행위를 규탄하는 민중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1907년 4월, 일제의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한 매국대신들을 처단할 계획이었으나 배신자의 밀고로 실패하였으며,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이 의병을 일으키자 장윤덕도 격문을 각지에 발송, 300여명의 의병을 규합, 편성하여 이강년 대장 휘하 의병장으로서 주로 풍기(豊基), 봉화(奉化), 문경(聞慶), 용궁(龍宮), 예천(醴泉)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9월, 이강년(李康秊), 민긍호(閔肯鎬) 등의 의진과 합세하여 1,0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문경 갈평리(葛坪里)에서 일경 나가타니(永谷) 경시(警視)와 미하라 (三原) 소위(少尉)가 인솔한 경찰대 및 수비대와 격전하여 일본군 3명과 한인 순검 2명을 사살하고 적을 격퇴시켰다.
또한,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대구 수비대를 격파하고자 상주읍(尙州邑)을 공격하여 일본인 자위단(自衛團)과 교전하던 중, 대구 수비대에서 출동한 다나카(田中) 대위의 1개 중대와 격전을 벌였으나 패하면서 장윤덕 의병장은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이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혀를 끊고 함구로 저항하다가, 1907년 9월 16일 상주군 함창면(咸昌面) 구향리(舊鄕里) 뒷산에서 총살 순국하였다.
“내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의거하여 강도 너희 놈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붙잡혔으니 오직 죽음을 바랄 뿐이며, 너희 놈들과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 [ 장윤덕 의사 어록중 ]
경북도 관계자는 “선생의 항일투쟁과 구국활동은 일반인들에게 크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 걸고 이룩한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민중의 큰 지도자이셨으며, 올곧은 성품으로 불의와 불법과 타협하지 않는 오로지 나라사랑과 항일투쟁 정신은 우리 민족의 암흑기를 버텨낸 큰 희생이었기에 그 빛은 영원히 바래지 않을 것이며, 선생의 희생과 실천의 삶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민족의 정신이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