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놀자 (1)
청소년과 함께 하는 상주지역의 샛강탐사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대표 조영옥, 이하 강습사)’에서는 지난 14일부터 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 상주지역 샛강탐사를 시작했다. 4대강 공사에 이어 2015년까지 20여억원을 들여 지류-지천 사업을 강행하려 한다는 소식에 강습사 회원들은 우리 지역을 흐르는 샛강들이 원래는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었는지를 청소년들에게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샛강탐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에 필자도 앞으로 총 5차례에 걸쳐 상주의 샛강에 대해 연재키로 한다.<글싣는 순서 : ① 상주의 샛강 ② 서보가 있는 북천 ③ 아자개의 숨결어린 병성천 ④ 설공찬전의 탄생지 이안천 ⑤ 공갈못에서 발원한 동천>
“경상도에는 대천이 세 개요 그 중에 으뜸이 낙동강이다. 낙동강의 기원은 세곳인데, 하나는 봉화의 태백산이고(지금의 태백 황지) 또 하나는 소백산이며 다른 하나는 문경의 초점이다. 이 세 개의 물줄기가 합하여 상주에 이르는데 여기서 비로소 낙동강이 된다.”(세종실록지리지)
옛날에는 강을 말할 때 발원지까지를 강이라 하지 않고 지류들이 합하여 강다운 강을 이룰때 비로소 강이라 불렀다. 그리하여 낙동강도 발원지인 태백 황지에서부터 부산까지를 낙동강이라 하지 않고 세 개의 지류가 합하여 강다운 강을 이루는 상주의 퇴강부터를 비로소 낙동강이라 하였다. 퇴강에서 부산까지는 약280km로 옛날 방식으로 하면 700리가 된다.
아리랑 춘자가 보리쌀을 씻다가
뒷동산 피리소리에 오줌을 쌌네
오줌을 쌌으면 적게나 쌌나
낙동강 칠백리 홍수가 났네
낙동강 주변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다. 이 민요 가사에 낙동강 칠백리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퇴강 어디쯤에서 발생한 민요가 아닌가 추측된다.
이렇듯 상주는 낙동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뿐만아니라 낙동강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긴 유래도 상주의 옛 지명인 상락의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아니던가?
상주의 낙동강 지천은 크게 보면 병성천과 이안천 두 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병성천은 북천과 남천 동천 3개의 지류가 합하여 내를 이루었으므로 엄밀하게 따지자면 네 개로 보는 게 맞을수도 있다.
백두대간 국수봉에서 발원하여 공성 청리 외남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를 일컬어 요즘은 그냥 병성천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북천과 동천을 만나기 전까지의 구간은 남천이라고 불렀으며, 이 남천이 북천, 동천과 합류한 지점부터를 병성천이라고 불렀었다.
병성천 하류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훗날 고려의 태조가 된 왕건과 마지막 일전을 불살랐던 곳으로 유명한 병풍산성이 있는 병풍산이 위엄을 간직한채 자리하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임진왜란 이후 흩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유림들이 세운 도남서원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이 도남서원과 병풍산성 사이가 병성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이며 건너쪽 봉황산에서 바라본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멋진 자태를 간직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유림들은 이곳을 ‘영남의 적벽’이라 부르며 가을이면 배 띄워 놓고 ‘적벽부’를 읊조리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4대강 공사로 인해 바로 그 지점에 소위 ‘상주보’라고 하는 흉물이 들어 서는 바람에 옛 경관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천의 발원지는 상산지(誌)에는 「北寧 蘆田峴」으로 위치가 기록되어 있을 뿐 현재까지 발원지가 어디인지는 연구된바 없고, 단지 백두대간상의 백학산과 윤지미산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두 개의 물길이 갈방의 작은비루에서 합쳐져 바랑골과 능바우를 거쳐 남장동을 지나 상주시내 북서쪽을 휘감아 돌아 영빈관 주변에서 둔치를 형성했다. 이 둔치를 정비해 만든 것이 북천시민공원이며, 이곳을 지나 지금의 스포츠센터 부근 화산들에서 남천과 합류한다. 이 북천이 상주시내까지 흘러 들어오기전 서쪽 남장동에 보를 쌓아 낙양동 벌판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 바로 서보였다. 우리 선조들은 이 서보를 소재로 하여 ‘서보가’라는 유명한 민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동천은 공검의 오태저수지에서 발원하여 세천부근에서 외서천과 합류하여 낙상을 지나 낙상들에서 남천, 북천이 만난 병성천과 합류한다. 공검의 오태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공갈못(공검지)이 발원지였다. 공갈못은 삼한시대때 축조된 삼대저수지(상주 공갈못,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중 원형이 가장 많이 보존돼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갈못 연밥따는 노래’라는 경상도 북부지역의 대표적 민요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에는 ‘매아설화’ ‘인주설화’ ‘용경설화’ 등 많은 전설이 숨어 있을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때만 해도 수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공갈못의 아름다움을 글로써 노래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당시에 ‘공갈못 연꽃을 못보고 죽으면 저승가서도 다시 돌려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갈못의 연꽃은 유명했다고 한다.
이안천은 상주 지역을 흐르는 지천중 수계가 가장 넓은 곳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상의 갈령삼거리에서 발원하여 화북과 화서로 돌아 내서면 서만리를 지나 외서 우산계곡을 통과해 은척으로 돌아 공검과 이안을 지나 함창에서 영강과 합류해 낙동강으로 흘러 든다. 무려 65km에 이르는 천으로 우산지역에서는 ‘우산천’으로, 공검지역에서는 ‘중소천’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언저리에 난재 채수선생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설공찬전(홍길동전보다 100여년 앞섬)을 발표한 ‘쾌재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