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

원이엄마, '소설,뮤지컬,오페라,국악,무용,가요,영화'로 거듭나다

2010-08-16     배오직 객원기자

420년 전, 원이엄마의 애절한 사부곡(思夫曲)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능소화 곱게 피던 날 만나, 그 꽃 만발한 어느 여름날 통한의 이별을 한 주인공 ‘응태와 여늬’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은 400년이 훨씬 지난 오늘, 낙화하는 순간에도 시들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는 꽃, 능소화로 다시 환생했다」

「원이엄마의 편지를 소재로 한 소설 ‘능소화’ 는 임을 먼저 보내고 무덤가에 한 그루의 소화나무를 심어 죽어서도 함께 하고자 했던 원이엄마의 분신 ‘여늬’ 의 마음이다. 작품엔 작가 조두진의 감성이 묻어있다」

지난 1998년 4월 택지개발이 한창이던 안동시 정상동 산기슭에서 바람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아래 비석도 없는 무덤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무덤은 마치 세인들의 접근을 원치 않은 듯 특이하게도 사방이 덩굴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장을 위해 무덤을 파 들어가자 기골이 장대한 남성으로 추정되는 죽은 사람의 미라와 망자를 위해 가족들이 써 넣은 편지가 나왔다.

출토된 자료와 고성 이씨의 족보를 종합한 결과, 무덤의 주인은 조선 명종 때 사람으로 고성 이씨 17대 손 이응태(1556-1586)의 것으로 밝혀졌다. 자료에 의하면 31세에 병환으로 요절한 그의 관에서는 미라가 된 이응태의 시신과 함께 그의 형이 부채에 손수 쓴 한시를 비롯해 만시(輓詩: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 등 한문 아홉 장과 한글과 한문 병용 석 장, 그리고 원이 아범의 아내가 눈물로 쓴 편지와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삼과 머리카락으로 만든 신발)가 출토되었다.

발굴 당시 매우 놀라운 점은 다른 가족들이 쓴 글들은 모두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지만 죽은 이의 아내, 즉 ‘원이엄마’로 세상에 잘 알려진 여인이 쓴 편지글은 거의 원래 상태를 유지한 채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속절없는 그리움의 세월을 이겨내고 차마 시신과 함께 썩지 못해 400여 년간을 간직해온 그리움의 햇살이 뜻하지 않은 개발로 인해 우리들에게 반사되어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먼저 잠든 시간 위로 원이엄마의 나중 잠든 시간은 억겁의 세월 속에 더욱 공고히 빛나 짧은 이별이 만든 긴 여운의 시작이었다.

이 편지는 가로 58.5cm, 세로 34cm이며 봉투는 따로 없다. 편지의 외면에는 ‘원이 아버님께’ 라는 짤막한 글로 수신자를 대신했고 당시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라 내면에는 구구절절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남편을 그리는 사부곡이 시계방향으로 그 흔한 여백하나를 남겨두지 않은 채 빽빽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살다가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남편의 시신을 빈소 병풍 뒤에 두고 그 많은 손들을 맞아야 하는 그 와중에도 매순간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의 편린들은 젊디젊은 한 여인이 곰삭혀야 할 메아리 없는 독백이었으리라!

한 장의 편지로는 어림없는 마음을 작은 붓에 혼을 담아 어느 한곳 방점을 찍을 수 없는 세필(細筆)의 글로 표현했다. 그 짧았던 부부의 정을 마치 이불안에서 서로 대화하듯, 보듬어 주듯, 오롯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꿈속에서라도 한 번 찾아와 태어난 자식을 안아 주길 바랐었던 그 아련한 마음을 바위에 새기듯, 바람에 날리듯, 구름에 실어 오늘에 이르렀다.

남편 이응태 또한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들의 애틋함이 400여 년이나 지난 그 한 장의 편지는 본인의 품속에서 그 길고도 긴 시간을 잘도 견디어 왔다.

가만히 두었더라면 둘은 영원히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또 한 바퀴의 반 천년을 보낼 수 있었건만 후대 사람들로 인해 또 다시 생이별(?)을 해야 했다.

관련학계의 지대한 관심... 전 세계가 주목 한 원이엄마

이렇듯 원이엄마가 이응태에게 보냈던 편지는 현재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최초의 한글 편지로써 국문학계에서는 당시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이는 그 시대 부부간의 호칭법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데 편지 내용에 보면 원이엄마가 남편 이응태에게 ‘자내’ 라는 호칭을 여러 번 사용한 걸 볼 수 있다.

기존에 발견된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는 ‘자내’ 라는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고 학계에서는 말한다. 이는 당시 부부간에는 상호 동등한 호칭을 사용했고 서애 가문의 상속에 관한 문서 ‘분재기(分財記)’에서 출가한 여식들에게도 재산을 나누어 주었던 것과 같이 그 때를 같이 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머리카락으로 엮은 미투리 한 켤레를 두 손 가득 가슴에 품고 있는 이름 모를 여인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현재 경북 안동시 정하동 법원 앞 큰 강가에 편지를 새긴 석물과 함께 한없는 그리움으로 서 오가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400여년 전 아가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그녀는 국내 뿐만 아니라 이런 내용은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됐고, 2009년 3월엔 ‘원이 엄마 한글편지’와 출토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 표지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원이엄마의 후예들
끝나지 않은 그들의 사랑

무덤 발굴과 동시에 KBS-TV <역사스페셜>에서 ‘조선판 사랑과 영혼’ 이라는 프로그램 방영을 시작으로 안동시가 원이엄마의 동상과 편지글을 새긴 비석을 건립했고 안동대학교 무용학과 정숙희 교수를 통해 ‘450년 만의 외출’이라는 현대무용으로 발표되기도 했으며 전미경 안동국악단장은 애절하고 안타까운 사랑의 편지글을 ‘무한지애(無限至愛)-원이 아버지에게’ 라는 제목의 국악가요를 창작해 제4회 안동국악제에 올리기도 했다.

또 2006년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 파리 패션박람회에서도 원이엄마의 편지를 새긴 한복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안동대학교 음악과 박창근 교수가 예술총감독을 맡고 2004년부터 6년 간 공을 들여온 창작 오페라 ‘원이엄마’ 가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창작지원 전국 공모작에 당선되어 2009년 10월 안동대학 솔뫼문화관 초연을 필두로 대구에서도 이틀에 걸쳐 상연된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안동시에서 고품격문화예술창작사업으로 진행한 영화「우리 만난 적 있나요」가 2010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비전 익스프레스 섹션에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편 임진평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배우 박재정과 윤소이 씨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영화로 안동의 수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는 판타지 멜로물이다. 지난 7월 17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부천CGV에서 초청 상영되었고 영화제 공식 사이트 온라인 예매는 오픈 되자마자 바로 매진되는 등 영화팬들의 기대 속에 지금은 공식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는 원이엄마의 실제 편지를 소재로 하고 있어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같은 꿈, 똑같은 운명감에 줄곧 시달려온 두 남녀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찾게 된 도시 안동, 그리고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420년 전 이름 모를 여인의 사부곡을 통해 서로 한 곳을 바라보며 400여 년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한다.

 

이번 영화는 (주)시네마토그라프와 안동시가 공동 제작, 경상북도가 후원을 했고 주요장면촬영은 대부분 안동에서 진행되어 지역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

하늘이 맑거나 바람, 비 날려도... 구중궁궐의 꽃, 능소화

한창 피어나던 능소화가 떨어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능소화는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담쟁이덩굴과 비슷한 나무로써 7-8월경에 나팔꽃 같은 주황색 꽃을 화려하게 피운다.

조두진의 소설 「능소화」에서 작가는 하늘이 갈라놓은 결코 만나서는 안 될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두 주인공의 만남과 이별을 암시를 통해 담담히 그려간다. 여주인공 ‘여늬’는 전생에 옥황상제의 시녀였는데 상제의 꽃인 ‘소화’ 를 훔쳐 지상으로 달아난다. 그랬기에 그녀 뒤에는 늘 그녀를 쫒아 다니던 악귀가 있어 결국 불행한 삶을 살고 만다.

남편 ‘응태’ 가 죽자 ‘여늬’ 는 그 무덤가에 소화나무를 심고 그녀 역시 곡기를 끊은 채 스스로 능소화가 되어 무덤가 풀밭에 눕고 만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책의 제목을 굳이 능소화로 이름 붙인 이유는 ‘구중궁궐의 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두어 차례 지나간 후 꽃들은 그 연유로 떨어져 풀밭에 누워버렸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타인의 범접을 막고자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신이 품은 독으로 스스로 누워버렸다. 잠시 이승에 더 머물러도 탓 할 사람 없건만 님 없는 세상에 아쉬울 것 하나 없다는 듯 탐스러운 꽃으로 떨어져 사람의 동맥 같은 힘찬 줄기는 마치 생명 다해가는 양 바람에 심하게 떨린다.

역사적으로 시공을 초월해 깊이 새겨진 사랑은 이들 뿐만은 않을 것이다. 실제의 인물로, 때론 가공의 인물로, 혹은 창작의 인물을 내세워 종이에, 나무에, 돌에 각인해 그들의 사랑이 변치 않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진한 새김은 그들의 마음 심연에 꽃 피워 뭇 사람들의 심금을 함께 울리는 아로새김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쁨보다는 슬픔을 간직해 똑같은 아픔을 같이 느끼는 절절하고 생생한 기억, 그것의 출발은 다름 아닌 그들의 아픔과 소통하는 것일 게다.

바람 불던 날, 꽃 떨어지기 전 우연히 산중에서 만난 능소화 한 송이를 보며 먹먹해지는 가슴에 작은 조각 하나 덧입혀 바람에 날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