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의 정치통계와 해설(1)

어떻게 집권 할 것인가? 어떻게 대선에서 이길 것인가?

2009-02-12     김대호

무수히 다양한 현실 가운데 어떤 현실부터 고려할 것인가?

광역별로 유권자 비중을 보면 수도권이 48%, 영남이 27%, 호남이 11%, 충청.강원.제주가 14%를 차지한다.
<2007년 대선 당시 광역별 유권자 숫자와 비중>


수도권 유권자 비중은 (1997 대선) 46%->(2002년 대선) 47%->(2007년 대선) 48%로 점증하고, 호남 대비 영남 유권자 비중은 1997년 2.42배-> 2002년 2.46배-> 2007년 2.54배로 역시 점증하고 있다. 이로부터 호남 기반 정당이 지역주의 광풍을 활용하려고 드는 한, 혹은 이 광풍이 잦아들지 않는 한 집권 가능성은 너무나 낮다고 보아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의 정치 지형은 역사적으로 호남/비주류 토호/민주.진보파와 영남/주류기득권 토호/보수파(건국/산업화) 세력의 대결구도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전자에 불리하고 후자에 유리한 정치 지형이다.

그러므로 인구 비중으로 보나 투표 성향으로 보나 승부의 관건은 수도권일 수밖에 없다. 한편 결선 투표 없는 단순다수 득표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 방식 및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득표제에 의한 국회의원 선출 방식으로 인해, 진보 진영은 본래 구분 정립 후 분화 발전해 야 할 세력들이 어거지로 묶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김대중과 같은 강력한 통합력을 가진 지도자가 없을 경우 생래적인 분열 성향 을 관리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임을 말해 준다.

<2007년 대선 당시 광역별 후보별 득표율(총 투표자 기준)>

<2002년 대선 당시 광역별 후보별 득표율(총 투표자 기준)>

<1997년 대선 당시 광역별 후보별 득표율(총 투표자 기준)>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을 비교하면, 민주당(국민회의, 새천년 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계열 후보의 득표율(총 투표자 기준) 39.7%(김대중)->48.5%(노무현)->26%(정동영)를 기록하였다. 이는 노무현 대비 정동영의 득표율이 절반을 약간 넘는(54%)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권 득표율은 41.4%(김대중)->50.5%(노무현)->23.9%(정동영)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노무현에 비해 정동영이 47% 밖에 얻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영남권 득표율은 13.2%(김대중)->25.5%(노무현)->10.2%(정동영)를 기록하였다. 이는 노무현에 비해 정동영이 40%밖에 얻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신한국당, 한나라당) 계열 후보의 득표율(총 투표자 기준)은 전국적으로 38.2%(이회창)->46.2%(이회창)->48.4%(이명박)를 기록하였다. 수도권 득표율은 37.8%------->44.3%------->52%를, 영남권 득표율은 58.1%------->68.6%------->62%를 기록하였다. 정동영은 이명박에 비해 총 532만표가 뒤졌는데 이중 영남권에서 338만표, 수도권에서 318만표 뒤졌다. 영남권의 경우 2002년 노무현조차 이회창에게 무려 297만표 뒤졌는데, 수도권의 경우는 2002년 72만표 이겼다. 따라서 이명박의 압 승은 곧 수도권의 압승이며, 정동영의 참패는 수도권의 참패라고 보아야 한다.

수도권은 표심은 점점 지역주의를 벗어나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도 가치를 선명하게 내건 문국현은 전국적으로 총 5.8%(총 투표자 기준)를 얻었는데 수도권에서 총 투표자의 7.1%를 득표했다. 수도권 다음으로 지역주의가 약한 강원.충청.제주권에서 5.9%를 얻었고, 지역주의 성향 이 비교적 강한 영남에서는 4.5%, 호남에서는 3.4%를 얻었다.

정동영, 권영길, 문국현, 노무현을 대략 [진보(민주,개혁)+호남]으로 묶고, 이명박, 이회창을 대략 [보수+영남]로 묶어서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2002년 [진보+호남]은 52.4% (48.5%+3.9%)를 얻었다가 2007년에는 34.8%(26%+3%+5.8%)를 얻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보수+영남]은 46.2%(이회창 단독)을 얻었다가 2007년에는 63.4%(이명박+이회창)를 얻었다. [진보+호남]은 5년 동안 17.6%가 감소하였고, [보수+영남]은 17.2%가 증가하였다. 이는 2002년 [진보+호남] 지지층의 1/3이 반대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 호남 지역주의 성향의 표의 결집력을 감안하면, 진보, 민주, 개혁을 지지하던 유권자의 1/3 이상, 어쩌면 절반 이상이 [보수+영남]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세력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는 길은 명백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역이라는 가치보다 훨씬 강한 가치를 내세워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 투사 경력에서 풍겨져나오는 매력보다 훨씬 강한 정치적 매력을 가지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와 매력은 강력한 바람을 부른다. 이 위력은 2008년에는 미국의 바락 오바마가, 2002년에는 노무현이 보여주었다. 2007년에는 문국현이 그 단초를 보여주었다.

영남 득표력은 영남에서 나서 자라, 숱한 낙선과 좌절을 거친 영남 후보라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와 매력에서 발원하는 전국적 바람이 만든다고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수도권 표심을 뒤흔드는 바람이 영남 득표력을 제고한다고 보아야 한다.

민주당이 리더십의 문제와 조직기반의 문제, 그리고 호남 지역주의가 보장하는 엄청난 정치적 기득권으로 인해 전국적 표심을 뒤흔드는 바람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전무한 이상, 민주노동당과 진보 신당 역시 편협한 이념과 진보적 대중조직(노조 등) 보장하는 정치적 기득권으로 인해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전무한 이상, 이는 민주당과 경쟁하고 나아가 압도할 수 있는 제3의 정치세력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호는 196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진주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대학 입학 후 뒤틀린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워보겠다고 떨쳐나선 수십만 386 세대의 일원으로서, 이 세대에게 부과된 고난과 고뇌의 짐을 지는 현장에서 대충 몸을 빼지는 않았다. 1년간의 무기정학, 2차례의 징역, 2년간의 공장생활을 거쳐, 1990년을 전후하여 5년간 구로지역에서 노동 상담/교육/정책연구를 했다. 1995년 초 대우자동차에 입사하여 2004년 초까지 연구/개발/기획 업무에 종사했다. 이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를 창업하여 몇몇 기업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경영전략 컨설팅과 정책 연구 용역을 수행했다. 현재는 사회디자인연구소(사) 소장으로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적 부활을 위한 철학, 가치, 이념,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한 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희망한국 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