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살다간 워낭소에게

[이대목에 밑줄] 떠나는 소에게

2009-02-09     배오직 객원기자

고독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다간 워낭소에게...

요즘 소의 해를 맞아 어느 독립 다큐영화 한편이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해 주고 있다. 바로 영화 ‘워낭 소리’가 그것이다.

산골 마을에서 소와 함께 30년의 삶을 살아온 어느 촌로의 일상이 수묵화처럼 그려진 영화인데 문득 생각나는 시가 있어 오래전 메모해 두었던 내 마음의 창고를 열어 보았다.

떠나는 소에게
정인화

그래, 미련 두지 말고 떠나시게나
독약 범벅된 그깐 사료 그만 자시고
미련없이 떠나시게나
코 뚫려 그것도 모자라 모가지까지 졸려 너무나 버거웠던 삶
이제 꿈에도 떠올리지 마시게나
다음 세상에는 깊은 산골 아예 인적 없는 두메산골 한 줄기 바람이나 이름없는 풀꽃으로 태어나 벌 나비 벗하며 때로 산토끼와 속삭이며 그렇게 살아가시게나
자꾸 뒤돌아보지 마시게나
원망의 눈빛 거두고 부디 나를 용서하시게나
어여 가시게나.....

시는 녹색평론을 열독하다가 몇 해 전 읽었던 시인데 유년 시절 시골인 외가에서 소를 몰던 그 시절이 생각나 머릿속 창고에 소중히 담아두었던 시다.

워낭이란 소의 모가지에 축 쳐지게 늘여 놓은 방울을 뜻하는데 소가 움직일 때 마다 청초롬 들려오는 그 소리는 끊어 질 듯 이어온 고단한 우리네 삶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외가 동네에는 소들이 집집마다 있었는데 참 신기한 일들이 있었다. 난 너무 어려서 알 수가 없었지만 소들이 내는 워낭소리로 동네 어르신들은 우리 집 소와 건너 골 할배 소를 보지 않고도 구별한다는 사실이다. 이때에도 농기구나 워낭 방울들은 시내에 있는 센터에서 구입해서 사용을 했기에 소리의 분간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소의 평소 움직임만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귀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세대를 이어 함께 살아온 우리의 소에게는 언젠가부터 워낭 소리 대신 구별하는 방법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인식표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소들의 고독한 삶을 해결해 주며 사람들의 먹고 사는 일을 동시에 풀어주는 필요불가분한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 ‘워낭 소리’에서 고독했지만 행복했던 삶을 살았을 워낭소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저마다의 워낭소리는 없는 건지 생각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