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관전 소감

신당 추진 세력에게는 위기이자 기회

2009-05-20     김대호

4.29 재보선에서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재보선 전문당 신화의 종식

한나라당은 재보선 전문당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당이었다. 원래 이 말은 2005년 4월 30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점에서 한나라당의 (창당이후) 재·보선 전적은 승부처(수도권) 기준 8승1패를 기록했다. 1패는 1999년 3월 30일 치러진 구로을 재보선이었다. 여기서는 한광옥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 이후 2009년 4.29 재보선까지 정기(상반기, 하반기) 재보궐 선거는 8번이 더 있었다. 물론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교육감 선거, 교육위원 선거는 제외하고서도......

1999년 이후 재보선 전문당 신화에 최초로 금이 간 것은 2008년 6월 4일 치러진 2008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였다. 이 때 수도권에서는 서울 강동구청장, 인천 서구청장, 경기도 포천시장 선거가 있었는데 한나라당이 전패했다. (통합)민주당은 강동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뿐만 아니라 같은 날 치러진 서울시 광역의원 선거(광진구, 강동구), 기초의원 선거(마포구, 양천구)에서, 대략 20% 내외의 투표율로 통합민주당 후보가 4곳 모두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표1> 2008.6.4 재보선 서울지역 선거 결과

그런데 당시는 촛불시위의 열기가 뜨거울 때 였고, 한나라당이 당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고, 그만큼 선거의 의미도 크지 않았기에 한나라당의 참패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4.29 재보선’은 다르다. 이번 재보선에는 한나라당이 꽤 당력을 기울였다. 의외로 수도권 접전지의 투표율은 높지 않았다. 시흥시장 선거의 경우가 투표율이 19.8%, 최대 접전지로 자타가 공인하고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총 출동한 부평을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도 투표율은 29.1%에 불과하였다.

한나라당이 재보선 전문당으로 기세를 떨친 것은 대체로 재보선의 경우 투표율이 낮고, 한나라당 지지층은 대체로 노년층이라 투표 참여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력을 많이 기울였고, 투표율도 낮은 수도권 주요 선거에서 패배하고, 텃밭인 울산과 경주에서 참패했다는 것은 한나라당이 충격으로 받아들일만 한다.

2. 여론조사의 헛발질과 ‘화난 표심’

‘더 피플’의 표심 조사(오마이뉴스 기사;‘경주는 한나라당과 여론조사의 무덤이었다’(2009.4.30, 김당 기자) 참조)에 따르면 부평을의 경우 투표 이틀 전(4월27일)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홍영표 후보가 34%, 한나라당 이재훈 후보가 34.2%,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는 17.3% 였다. 게다가 여론조사 지지율 추세로 볼 때 홍영표는 답보 상태였고, 이재훈은 소폭 상승세였다. 역대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로 보면, 수도권에서 민주당 계열은 적극적 투표층의 열세로 인해 한나라당 계열보다 여론조사에서 5%~10% 정도는 앞서야 당선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여론 조사 결과로만 보면 한나라당이 내심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앞섰거나 거의 백중세로 나타난 시흥시장 선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홍영표는 4월 27일 여론조사 대비 15.5%p 더 얻었고, 이재훈은 5%p 정도를 더 얻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 김응호나 천영수는 여론조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로부터 여론조사에서 누구를 찍을 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층(17.3%)의 대부분은 홍영표를 지지했든지 아니면 홍영표 지지층이 대거 투표장에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과거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지지층이 그랬던 것처럼......(그런데 시간대 별로 투표자 증가 추이를 보면 부평의 경우 직장인 퇴근 시간인 18시 이후에 특별히 증가 추세가 높지는 않았다.)

<표 2> 부평을 여론조사 추이와 실제 득표율

투표율이 19.8%에 불과하여 한나라당이 승리하기 더 좋은 환경의 시흥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김윤식 후보는 비공개적으로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열세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노용수 후보를 2%p 앞섰다. 그것도 민노당, 진보신당, 시민단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최준열 후보가 9.9%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조사가 크게 어긋난 곳은 여기 뿐 아니었다. 전주 완산의 경우도 4월27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광철 후보 34.4%, 무소속 신건 후보 32.9%, 한나라당 태기표 후보 9.2%, 잘모르겠다는 응답자가 14.2%였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이광철이 32.3%, 신건이 무려 50.4%, 태기표는 7.5%를 얻었다. 이광철, 태기표는 대충 오차범위 내에 있었지만, 신건의 득표율은 유권자들 상당수가 표심을 의식적으로 숨기지 않고서는(혹은 신건 지지층이 대거 투표장에 몰려나오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지지율을 기록하였다. 이는 경주에서는 훨씬 더 심하게 나타났다.

<표 3> 전주 완산갑 여론조사 추이와 실제 득표율

한나라당 정종복은 4월 27일 조사에서 38%를 얻었고, 상승기조에 있었다. 무소속 정수성은 30.3%를 얻었고, 하강기조에 있었다. 잘모르겠다는 사람은 10.7%에 불과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수성은 무려 15.5%p를 더 얻은 45.9%를, 정종복은 36.5%를 얻었을 뿐이다. 나머지 후보들은 여론조사 지지율에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여론 조사 자료로만 보면 그 어떤 사람도 무소속 정수성의 압승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표 4> 경주시 여론조사 추이와 실제 득표율

이 세곳의 투표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은 의식적으로 표심을 숨겼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 세력(전주는 민주당, 경주와 부평은 한나라당) 에 대해 대단히 마뜩찮은 감정을 가지고 한마디로 ‘화난 표심’을 의식적으로 숨기고, ‘응징 투표’를 한 흔적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반한나라당(경주, 부평), 반민주당(전주) 유권자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 했다고 보아야 한다.

※ 17대 대선에서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의 불일치가 가장 크게 난 후보는 정동영이었다. 정동영은 여론조사에서는 12월 중순까지 지지율이 15%대 였으나 실제 득표율은 26%대로 나왔다. 이명박, 이회창, 문국현은 12월 중순의 여론조사 지지율과 실제 득표율이 별 차이가 없었다. 정동영이 얻은 15%와 26%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지지층의 으뭉함의 발로 아니면 내키지 않는 '울며 겨자먹기'식 지지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4.29 재보선에서 드러난 표심은 '울며 겨자 먹기식'지지라기 보다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으뭉한 지지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표심을 의식적으로 숨기고, 혹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게 하여, 그 지역의 주류 정치세력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응징 투표’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이는 한나라당 및 민주당의 공천 행태나 정부여당, 특히 검찰과 보수 언론의 망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경주의 경우 지난 총선에서 심판을 받은 정종복을 2번에 걸쳐 공천 한 것에 대한 분노, 친이의 핵심에 대한 친박 유권자들의 거부감, 그리고 이명박 정부 및 검찰의 행태에 대한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반감이 겹쳐진 것처럼 보인다. 정종복은 지난 총선에서 42%(친박연대 김일윤은 47.2%)를 얻었으나 이번에는 36.5%(무소속 정수성은 45.9%)를 얻었다.

전주의 경우 전주가 낳은 큰 인물(?)에 대한 민주당의 대우(예우)가 부당하다는 느낌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울산 북구의 경우 민노당-진보신당 단일화 효과에 더하여 반이명박 표심, 즉 친박연대와 민주개혁진보 표심이 크게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울산 북구의 경우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 조승수가 승리한 이후 재보선, 지방선거,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지난 총선에서는 진보 단일 후보였던 민노당의 이영희는 불과 31.8%의 득표를 하였고, 한나라당의 윤두환은 46.2%, 친박연대의 최윤주는 21%의 득표를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조승수는 이영희 보다 무려 17.4%p가 높은 49.2%를 얻었고, 한나라당 후보 박대동은 윤두환보다 4.8%p 보다 낮은 41.4%를 얻었을 뿐이다.

부평을의 경우 홍영표는 18대 총선에서 38.2%에서 11.4%p가 높은 49.5%를 얻었으나, 한나라당 후보는 18대 총선에서 43.5%에서 4.4%p가 빠진 39.1% 를 얻었다.

<표 5> 18대 총선 주요 격전지 후보별 득표율

3. 검찰과 조중동의 망동 효과?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지극히 편파적이고 무도한 수사와 보수 언론의 악랄한 보도 태도는 참여정부에 대한 애정이 깊고, 상식(반칙, 거짓이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똑바로 서 있는 사람들을 극도로 분노하게 하였다. 이 층의 분노와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빼놓고서는 시흥시장 선거와 부평을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는 제대로 해명되지 되지 않는다. 경주시와 울산 북구 선거에서도 이 분노가 기존의 대결 구도에 얹혀진 측면이 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투표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검찰과 조중동의 부당한 ‘노무현 죽이기’가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기본적으로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 설킨 농촌형 선거구가 높았고, 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수도권 또는 대도시형 선거구는 낮았다. 예컨대 전남 장흥군 제2선거구는 광역의원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61.9%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반면에 서울 광진구 제2선거구는 불과 16.6%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충북 증평군 나 선거구는 기초의원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69.4%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반면에 광주 서구 다 선거구는 19.0%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표 6> 4.29 재보선 광역의원, 기초의원 선거 결과

국회의원 선거구 중에서는, 경주시의 경우 지난 총선때보다 1.9%p 높은 53.8%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울산 북구는 지난 총선때와 거의 비슷한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부평 을’의 경우 이번 선거 최대의 접전지로 알려졌고, 거물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하였으나 투표율은 지난 총선에 비해 한참 못미치는 29.1%를 기록하였다. 여야가 엄청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면 부평 을의 투표율은 시흥시(19.8%)에 근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표 7>4.29 국회의원, 시흥시장 선거 결과

※ 18대 총선의 선거구별 투표율을 종합하면 서울에서 투표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극적인 요소가 있는(대개 스타나 거물들이 맞붙는다) 전국적인 접전지냐 아니냐이다. 예컨대 18대 총선에서 서울지역에서 가장 투표율이 높은 선거구는 계급 투표를 한다는 전설이 떠도는 강남 3구가 아니라, 정몽준-정동영이 맞붙은 동작을이었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매우 높은 노원을을 제외하면 투표율 상위 5위안에는 손학규-박진이 맞붙은 종로, 이재오-문국현이 맞붙은 은평을, 노회찬-홍성욱이 맞붙은 노원병이 들어있다.

수도권 선거나 울산북구 선거에서 검찰과 언론의 악랄한 수사및 보도로 인한 역풍과 박근혜(친박연대)의 비협조 바람 중에서 어느 바람이 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두 개의 바람이 민주당과 진보신당에게 크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반이명박 바람은 지금보다 더 강할지 모르지만 박근혜(친박연대)가 일으킬 바람은 정반대로 분다고 보아야 한다. 그럴 경우 울산북구의 진보신당의 승리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4. 정치적 독과점에 대한 환멸

-독과점을 깨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에게는 기회-

민주노동당은 전남 장흥군 제2선거구에서 정우태 후보가 61.9%라는 매우 높은 투표율에서 무려 48.8%를 얻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35.6%를 얻었다. 기초의원 선거인 광주 ‘서구 다’선거구에서는 류정수 후보가 19.0%의 투표율에서 54.1%를 얻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45.9%를 얻었다. 이는 민주당의 오랜 정치적 독과점 및 구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격심한 반발이 비교적 참신한 후보에게 집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18대 총선에서도 드러났지만, 이번 투표에서도 유권자들은 양대 정당의 관성적 지지로부터 점점 벗어나고 있다. 다시말해 양대 정당공천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는 약해지고, 당선가능한 유력 인물에 몰아주기 투표 경향이 강해졌다. 동시에 (응징투표를 포함한) 전략적 투표 성향도 강해졌다. 게다가 이제는 여론조사에 응답할 때 조차도 짱구를 굴려 답하는 층이 엄청나게 커진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소비자들이 더 똑똑해지고, 더 짱구를 굴리면 좋은 물건을 가진 상인에게는 큰 기회이다. 반면에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 선택권을 제한하여 후진 물건을 팔던 상인에게는 큰 위기이다.

5. 떡수에 떡수로 대응한 선거

사실 민주당 당권파의 정동영 공천 배제는 주체 역량을 넘어서는 무리수 였다. 무엇보다도 배제 명분이 취약했다. 정동영 공천 배제가 민주당의 수도권 득표율과 신뢰도 제고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 보다 훨씬 큰 요인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민주당의 기풍이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었다면, 유권자들이 국회의원을 ‘지역 발전을 위해 중앙 예산 많이 따오고, 지역 민원을 잘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위한 일꾼으로 본다면, 정동영 공천 배제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뿌리깊은 문화, 기풍과 당권파의 행태는 정동영에게 높은 수준의 ‘정치도의’를 강요할 자격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전주 시민의 감각에는 그렇다. 이들에게 정동영은 부당하게 배척받는 억울한 거물 정치인으로 비친다. 어쩌면 정동영 공천파동은 호남인들이 자다가도 펄떡 일어날만큼 지독히도 싫어하는 이지메 내지 왕따의 악몽을 불러올 지도 모른다. 이 쯤되면 정동영은 불쌍하고 고결한 순교자로 격상되어 버린다.

분명한 것은 정동영이 명명백백한 민주당의 公敵이 아닌 이상, 정동영 공천 배제를 보고 민주당이 달라졌다고 할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정동영 공천 배제가 열린우리당 해체와 대선 참패에 대한 화풀이 정치이자, 유력 대권 주자들의 정동영에 대한 견제 책략이자, 민주당을 정치도의를 철저히 지키는 신사들 모임으로 착각(?)하거나 분장하려는 사람들의 '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한국 대중들이 생각하는 한국 정치 문화는 지역에 많은 이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거물 정치인(정치적 맹주)을 키워주고 밀어주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 한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도, 박근혜도 이런 열망을 토양으로 자라난 정치적 거목이다. 지난 대선 시기 정동영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만든 전북 민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선 참패, 총선 실패, 좀 쪼잔한 전주 덕진 출마로 인해 정동영을 자랑스러워하는 민심은 많이 퇴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천배제 파동은 정동영을 아끼고 대견스러워하는 호남(전북) 민심을 더 키웠을 것이 틀림없다. 마치 김대중이 1973년의 김대중 납치사건, 1980년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인하여 그 누구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가 되어버렸듯이......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전주 시민들의 애틋하면서도 화난 표심을 만들었다. 물론 정동영은 전북의 맹주로서의 위상은 과시했지만 많은 것을 잃었다. 철저하게 전북에서만 통하는 용렬한 정치인이 되어 버렸다.

한편 민주당 당권파는 때묻고 부실한 60대가 20대의 힘, 패기, 열정, 순수를 보여주려다가, 다시 말해 주체 역량에 맞지 않는 전술을 구사하다가 큰 곤욕을 치를 뻔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검찰과 언론’의 노무현 죽이기 망동으로 인해 수도권 승리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정동영보다는 더 훌륭한 명분을 쫓았기에 전술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덜 입었다. 오히려 전주에서 정동영에게 얻어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을 본의아니게 연출하므로서 얻은 것이 많다. 전주나 전북 외의 유권자들에게는 민주당은 (전북)지역당으로 쪼그라드는 경향과 쫀쫀한 정치 행태에 맞서 싸우며, 정치도의를 지키려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 통용.견지되던 정치도의(명분)및 정치행태를 훨씬 뛰어넘어서 행동한 민주당 당권파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이번 선거는 애들 싸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애들 싸움은 대체로 눈감고 주먹 막 휘두르다가 어쩌다가 코피 먼저 터진 녀석이 ‘으앙’ 하고 울면서 종결된다. 이번에는 주요 정치 행위자들이 하나같이 애처럼 사려깊지도 못했다. 검찰도 상식에 어긋나게 떡수를 뒀고, 이명박과 이상득도 공천과 검찰 지휘에서 떡수를 뒀다. 물론 정동영도 민주당 당권파도 민노당도 떡수를 뒀다.

예컨대 이명박과 검찰이 현명했다면 권양숙, 정상문 등의 비리만으로도 노무현에게 도덕적 치명상을 주고, 뭔가 혐의가 더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용이나 예우 상 일부러 수사를 중단한 듯한 인상을 주어 노무현을 검찰의 관용의 수혜자(빚진자)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무현에게 실망한 사람들 조차 이명박 및 검찰의 야비하고 편파적인 수사에 치를 떨게 만들었다. 그래서 노무현이 준 실망보다 수십배 강한 증오를 이명박과 검찰을 향해 발산하도록 하였다. 이 와중에 노무현은 부당하게 탄압받는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복귀해 버렸다. (물론 나는 검찰의 떡수에 쾌재를 부르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불행이지만 당파적으로는 이들의 망동은 결코 나쁘지 않다. 슬픈 일이지만......)

마찬가지로 민주당 당권파가 현명했다면 정동영의 위신을 충분히 깍아내린 후, 전 대통령 후보에 대한 예우와 시혜 차원에서 혀를 끌끌차면서 공천을 줘버렸을 것이다. 그러면 정동영은 왜소한 3선 국회의원 중의 한 명으로 자연스럽게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권파의 떡수로 인해 정동영은 부당하게 배척받고 탄압받는, 조무래기 대권 주자들이 두려워하는 막강한 거물 정치인이 되어 버렸다. 김대중의 뒤를 이을, 전주가 낳은 위대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용렬한 인간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이번 선거는 이명박, 검찰, 정동영, 민주당 당권파 모두가 사려깊게 처신하지 못하여, 애들 싸움판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입지 않을 수도 있었던 상처를 많이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당권파는 검찰과 정동영의 떡수로 인해 얻은 것이 적지 않다. 더욱이 이 기세를 하반기 재보선까지 끌고가면, 정치 지형(흐름)상 더 많은 승리를 일굴 것이이기에 입지는 더욱 탄탄해 질 가능성이 높다.

4.29 재보선은 '대의를 쫓으면 패배를 해도, 실수를 해도 덜 다치고, 운이 좋으면 대박이 터진다'는 평범한 교훈을 상기시켜준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대의를 당당히 견지하는 일을 왜 2007~8년에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해체와 (노무현과) 얄팍한 차별화 쇼, 작년 총선 시기의 유력 주자들의 졸렬한 행태 등 무뇌아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때 대의를 당당하게 지키는 세력이나 지도자가 있었다면, 대선 참패이후 훨씬 빠르고 힘있게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만만치않은 반이명박 정서, 민노당의 호남 광역/기초 선거에서의 승리, 진보신당의 울산 북구 압승, 영.호남에서 독과점 양대 정당에 대한 이반 조짐, 민노당.진보신당의 뚜렷한 한계 등은 진보적 자유주의 신당 추진세력에게 큰 기회이다. 하지만 민주당 당권파의 전주 패배(정동영 세력의 득세)와 수도권 승리 그리고 민주당의 재보선및 2010 지방선거 대박 가능성 등은 큰 위기이다. 위기를 줄이고 기회를 움켜쥐는 길은 흔들림없이 대의를 쫓는 것 일 수 밖에 없다. 대의는 곧, 이 시대의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대표하는 지식근로자(swing voter)와 가장 열악한 절대 다수인 거대한 3비층(swing voter)의 사랑을 받는 제대로 된 정당, 집권이 가능한 진보 정당 건설을 위해 전심전력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