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게 산다
[청년칼럼]성다솜(예술하는 녹색당원)
지역 작가로 살아가는 내가 지역작가로 살아가는 것을 글로 쓴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살아가는 것이 특별한 것은 없지만 특별하게 살고 있는 내 삶이 텍스트로 쓰여 지게 된다는 사실이 굉장히 쑥스럽다. 나는 첫 개인전을 오픈 하고 하루 지난 후 이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 좋은 것들만 떠올랐다. 지역 작가로 사는 것이 얼마나 기회가 적으며 고립적인 삶을 살게 되는지만 적는다면 나는 비참해질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더니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특별한 삶은 남들이 보면 없어 보일 수도 있고 고립 되어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나는 당당히 말한다.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서울에 가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나를 보면 “다른 곳에서는 전시 안해?” 하고 묻는다. 물론 서울에서 전시를 하고 싶지만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며 많은 기회를 놓친 나는 말한다. “내가 전시할 날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니들 내 전시 보러 다녀야 되니까 긴장해라 ” 라고 말이다. 이렇게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많이 남는다. 도시에서 대학 나오고 자리를 잡았더라면 나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 해왔다. 모든 예술의 중심이 서울에 집중 되어 있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거기서 활동을 한다. 그만큼 크고 작은 기회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서울시나 중앙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도 많이 있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성을 표출하며 살아가는 작가들이 있다. 한편으로 많이 부럽기도 하지만 지역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마냥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얼마 전 첫 개인전 오픈식이 있었다. 정신이 없어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체 오픈식을 시작했는데 고맙게도 많은 사람들이 와 주셨다. 대부분 오신 분들은 나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분들이었고 평소 연락을 많이 하지 않았던 분, 15년 만에 만난 분도 오셔서 축하를 해 주셨다. 다들 평소 연락하며 살지도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에 대해 많은 관심과 격려를 해주셨다. 나는 그분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정말 여기서 첫 전시를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구나. 딸래미 둘을 혼자 키운 엄마는 이야기 한적 있다. 자신은 아이들을 혼자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많은 선후배, 친구들이 함께 키워 줬다고. 나는 오프닝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사랑을 느꼈다. 나를 성장시킨 사람들과 또 함께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과 첫 개인전을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만약 다른 지역에서 전시를 했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다.
작가의 길을 선택하고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뭐 먹고 살아요?” 이다. 이 말은 웃기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 미술시작하면서부터 듣던 소리이다. 작가라는 것이 옛날 화가들처럼 죽어야지 빛을 보고 귀 잘라야지 유명해지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 거 같다고 마음을 추스르며 살았다. 당장 내가 그리는 그림이 회사 다니는 사람 월급처럼 꼬박꼬박 돈을 받진 못한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이 단순히 돈은 어떻게 벌어요? 하는 질문에는 벽화도 하고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고 이야기 한다. 생각보다 예술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 하다. 벽화, 인테리어, 설치, 페이스페인팅, 초상화, 엽서, 티셔츠 만들기, 미술체험 등 년 동안 했던 일들도 꽤 엄청나다. 남들이 보면 벌이도 일정하지 않고 너무 힘들 거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직업은 작가이기 때문에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최고의 일이다.
지역 청년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조금의 아이디어를 더한다면 진부 하지 않고 재밌게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큰돈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번년도 벚꽃 길에서 핸드메이드 아트페어에 참가 한 적이 있다. 친한 선배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못난이 드로잉을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다른 그림 스타일로 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었다. 우리의 컨셉은 원빈과 이나영이 손잡고 와도 못생기게 그린다는 것이었다. 못생긴 컨셉이니 그리는 우리도 부담이 덜했고 쓱싹쓱싹 쉽게 그리며 못생겨도 기분 좋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는데 5분도 안 걸리니 가격은 당연히 엄청 싸게 받았고 사람들에게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그릴 때는 몰랐는데 미술과외선생님을 하는 내 친구는 “니들 도대체 몇 장 그렸길래 가는 집마다 그림이 걸려 있냐?” 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삼일동안 한 행사가 끝나고 돈은 얼마 못 벌었지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꼈고, 사람들이 우리가 매일 하는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호기심과 응원을 보내 준 덕에 잘 끝낼 수 있었다.
돈을 버는 액수로만 측정 된다면 지금 나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고 즐거워하는 일이 돈도 조금 벌어 준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항상 돈은 모자라기 마련이다. 그런 돈을 모으려고 나의 즐거움을 뺏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면서 살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살아가는 것이라면 하고 싶은 거 하는 멋진 사람이 되자는 것이 인생 모토이다.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지역 작가로 버티는 일은 힘이 든다. 우리가 지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면서 작가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여러 가지를 느끼며 삶을 더 풍요롭게 발전시키는 일에는 예술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 해왔다. 서울에 문래동은 예술촌으로 유명해졌다. 원래 이곳은 적막한 공업사 거리였다. 저렴한 작업실을 구하던 젊은 작가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을 아름답게 꾸며지고 많은 사람의 데이트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작가들이 모여 마을을 꾸미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 일을 지방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면 지역민들이 열망하는 발전과 관광 , 청년 일자리를 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선 여러 사람의 도움과 나아가 지방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혼자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나 또한 혼자서 그림을 그린다면 일치감치 그만 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나를 믿어준 가족과, 함께 작품 활동하며 발전하고 있는 친구, 선 · 후배들, 지나가다 아는 사람, 인사하고 지내는 사람, 술 같이 마시는 사람, 가끔 이야기 나누는 사람, 갑자기 만난 사람, 이처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평범한 것이 좋지 않아요?”라는 질문 할 때가 있다. 평범한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 잘 모르겠지만 만약 평범하다는 기준이 좋은 회사 가서 돈 많이 버는 남편 만나 결혼해서 애 키우고, 남들 시선 신경 쓰며 사는 거라면 나는 평범하지 않다. 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평범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평범한지 특별한지는 모르지만 나는 모든 일을 특별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특별한 것이 되는 지금 현실이 슬프기도 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지만, 어쨌든 나는 지역작가로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상처를 서로 가깝게 붙어있는 선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은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자아가 이미지화한 선인장을 통해 '그것'이 내가 받은 상처 또는 타인에게 준 상처이기도 하다. 상처는 개인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